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비 Dec 22. 2019

내 땅과 내 땅이 될 땅


글을 쓰는 것보다 오랜 시간을 읽으며 보낸다. 책 속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가 펼쳐진다. 어느 작가가 쓴 세계를 감탄하며 읽다 보면 나의 세계도 조금은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는 EBS에서 방영하는 ‘세계 테마 기행’이다. 아직 미처 가보지 못한 나라들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여행 코스이다. 흔한 패키지 관광에서 볼 수 있는 코스가 아니다. 그 나라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장소를 탐험하기도 한다. 예상치 못했던 여행지의 발견은 봐도 봐도 흥미롭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하루의 스트레스를 '세계 테마 기행'을 보며 풀기도 했다. 멍 때리고 보다 보면 대 자연에, 화사하게 웃는 사람들에 매료되어 지끈지끈했던 머리가 맑아지기도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안타깝지만 TV로 여행 프로그램을 열심히 본다고 많은 나라를 경험했다고 할 수 없다. 여행은 보는 것만큼 냄새를 맡고, 맛보고, 온도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 경험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가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손꼽을 수 있으니 그것으로도 만족한다.

여행은 직접 경험이 중요하지만, 생각을 한다는 것은 좀 다르다.  생각은 어떤 이의 의견을 통해 나의 생각이 열리기 때문에 TV를 보고 생각하든, 책을 읽고 생각하든 간접 경험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책을 읽으며 생각의 폭을 넓혀가는 건 직접 경험에 가까운 일이다.  쓰는 사람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와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때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은 그들이 펼쳐놓은 문장들 속에 마음의 빗장이 열리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그 경험은 곧바로 내 머릿속에서 나의 경우를 대입시켜 또 다른 나의 생각을 만든다.

오늘은 김중혁 작가의  ‘바디 무빙’이란 책을 읽는다. 몸을 다룬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 책은 몸과 관련한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운동을 하며 쓰는 몸뿐 아니라 일상에서의 우리 몸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경험이 펄떡이는 생선처럼 살아있다.

김중혁 작가의 책 속 한 문장에서 책을 읽는 나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 땅과 내 땅이 될 땅. *

책을 읽는 행동은 내 땅이 될 땅을 보러 다니는 일과 같다. 생각의 땅. 작가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경험의 부족보다는 생각의 부족을 뼈저리게 느낀다. 책을 열심히 읽어 매력적인 통찰로 가득 넘치는 새로운 땅을 찾아내서 얼른 내 땅으로 만들고 싶다.


오늘도 잠에서 깨자마자 따뜻한 차 한잔과 책부터 집어 든다. 내 땅이 될 무지막지하게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다.



*이분법적 사고를 설명하기 위해 난다김의 발언을 인용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타할아버지 들통나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