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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23. 2019

발이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내 신체 중 자신 있는 곳을 한 군데만 말하라면 발이었다. 나는 소위 칼발이라고 불리는 좁고 길쭉한 발을 가졌다. 발 볼이 넓지 않아 날렵하고 발가락도 긴 편이다.

발은 쉽게 보일 수가 없다. 양말 속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발이 드러나더라도 여름에 샌들을 신을 때 정도인데 신발 안의 발을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발을 뽐내려고 누군가에게 보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내게 발부심을 갖게 한 사건이 있었다. 여고시절 학교에서 수련회를 갔을 때였다. 같은 방을 쓰던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게임을 하던 중이었다. 그중  한 명이 "너 발이 예쁘게 생겼네"라고 얘기했다. 그 친구의 말에 모여 앉아 있던 친구들이 서로의 발을 보이며 누구 발이 어떻게 생겼는지 들여다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누군가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그날의 감탄은 두고두고 ‘발부심’을 갖게 만들었다.


발부심은 막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정점을 찍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외모에 무척 신경을 썼다. 일에만 매달려도 될까 말까 한 시간에 외모에 공을 들인 이유는 자신감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광고주 앞에 설 때, 협력사 담당자를 만날 때 좀 더 자신감 있게 내 의견을 말하고 싶었다.


그 자신감의 원천을 킬힐에서 찾았다. 몇 년간을 사계절 킬힐이라 불리는 7센티미터 이상의 굽 높은 구두를 신었다. 여름에는 스타킹을 신지 않으니 맨발이 고스란히 킬힐 위에 얹혔다. 키가 10센티미터쯤은 커 보이고 구두 사이로 보이는 발도 날렵해 자신감이 생겼다. 킬힐을 신으면 프레젠테이션도 더 잘하는 것 같았고, 꿈에 그리던 능력 있는 커리우먼 된 것 같았다.  


킬힐 위해서(지금은 신고가 아닌 위에서 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위태위태했으니까) 버스의 흔들림도 견뎌야 했고, 멀고 먼 지하철 환승통로를 달리기도 해야만 했다. 아시다시피 지각 마지노선의 출근 전철을 놓치지 않기 위한 달리기는 절박하다.


어느 해에는 높고 가파른 오르막 꼭대기에 있는 빌라에서 살았는데 킬힐을 신고 매일 등산하는 기분으로 집에 갔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면 발이 불덩이처럼 뜨거워 피로가 몰려왔다.

아이러니하게 더 드러내고 예뻐지고 싶어 신은 킬힐에 발은 급속하게 늙어갔다. 발가락 열개의 마디에는 굳은살이 박였고, 굳은살이 박이지 않은 발가락이 있다면 반드시 물집이 잡혀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서 바라본 내 발은 더 이상 곧고 날렵하지 않았다. 발가락이 한쪽으로 휘었으며 발 볼에도 볼록한 굳은살이 생겨 뭉툭해 보였다.


언젠가 사진으로 봤던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떠올랐다. 그녀의 발은 영광과 노력의 상징인데 나의 발은 낮은 자존감의 상징인 것만 같았다. 그날로 킬힐을 벗어던졌다. 출근길에도 대부분 스니커즈를 신었고 꼭 필요할 때 신어야 할 구두는 몇 켤레 책상 아래에 놓아두었다. 어차피 킬힐을 신는다고 자존감이 높아지지도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키가 커 보이지 않고 예뻐 보이지 않아도 자신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신입 시절의 고달픔은 어려운 일도 아닌, 인간관계도 아닌, 내 일에 힘을 실어줄 경험의 부재인 경우가 많았다. 킬힐을 고집하던 나를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게 가장 자신 있는 신체부위는 발이었다.'는 과거형이다. 이제는 어디 가서 외모의 예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보다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게 맞다.


요즈음 닮고 싶은 사람은 내면이 단단하고 깊은 사람이다. 그 굳건함에서 나오는 아우라를 나도 가졌으면 좋겠다. 마음에 힘이 센 사람이 되어 나를 다독이고, 가족을 다독이고, 친구를 다독여주고 싶다. 어쩌면 평생 어려운 일일 수도 있으나 타고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마음의 예쁨은 닮고 싶어 애쓴다고 해서 더 미워지지도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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