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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24. 2019

엄마 먼저 잘게

아이는 며칠 째 밤 열한 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놀고 싶을 때까지 놀게 두었다가 잠이 오면 자연스럽게 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 시간까지 같이 놀아주었다. 아이가 졸린 눈을 비비기 시작하면 그제야 재우러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방에 들어간 후에도 쉽게 잠을 자려 들지 않는다. 엄마와 함께 자기 시작한 이후로 잠 자기 전 놀이 시간이 길어졌다. 누워 있는 엄마 배 위로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고, 데굴데굴 구르기도 몇 번 더 한다. 누워서 노래를 서너 곡쯤 함께 부르고 돌아보면 그제야 잠이 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도 그랬다. 회색 지붕 집에 살던 어린 시절 엄마, 아빠, 나, 동생은 한 방에서 이불을 펴고 잠을 잤다. 엄마는 겨울이면 폭신한 솜으로 만든 요를 깔아주셨다.  막 이불장에서 꺼내 차가운 이불에 몸을 비비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동생과 이불 위를 구르기도 하고, 이불 꺼내 텅 빈 이불장에 숨어서 숨바꼭질을 하기도 했다.

이불을 펴고도 한참 노는 동안 부모님이 얼른 자라고 말했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어쩌면 말을 안 들었으니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한참을 놀아도 아홉 시가 안됐다. 시계가 아홉 시를 가리키면 그제야 누웠다. 종일 일한 엄마는 피곤한지 늘 먼저 잠이 들었고,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 잠에 빠저 드는 아빠도 코를 골고 계셨다. 엄마 아빠는 대부분 나보다 먼저 주무셨다. '엄마, 자나?', '아빠~ 자나?' 몇 번 물어도 대답이 없으면 나도 잘 준비를 했다. 엄마 아빠 머리맡을 조용히 기어가 전등 스위치를 끄고 깜깜한 방에서 단잠에 빠졌다. 

예전 어느 TV광고가 생각난다. 아이를 재우는 엄마는 동화책을 읽어주며 공룡 흉내를 낸다. 졸음을 참고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자 침대에서 살짝 빠져나온다. 이어지는 대사는 이렇다. 


"준서야, 사실 엄마 공룡 안 좋아해~"


로맨스 소설의 온라인 연재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광고였다. 엄마의 모습이 따뜻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광고를 보며 생각했다. '나도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잠들 때까지 동요를 불러주고, 동화책을 읽어줘야지.' 


이후 아이가 태어나고 나도 꿈꾸던 것처럼 잠들기 전 재미있는 얘기들을 들려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광고 속 엄마처럼 잠들 때까지는 아니고 십분 쯤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아이가 일찍 잠드는 날도 있었고, 한참이 지나도 잠들지 않으면 그냥 조용히 배를 토닥여 주었다.


아이가 조금 크고 자동차 놀이를 좋아하면서부터 밤잠을 자려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자기 전에도 신나게 더 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알기에 금방 재우지 않았다. 아직 키도 작고 몸무게도 또래에 비해 덜 나가는 아이를 생각하면 얼른 잠을 재워야 쑥쑥 클 것이다. 

어젯밤에는 신데렐라가 된 마음으로 아홉 시 종이 치자마자 온 집의 불을 끄고 잠잘 시간을 알렸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이라 쉽게 잠에 들 리 없었다. 거실에서 놀던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푹신한 이불 위를  굴러다닌다. 아기 곰처럼 굴러다니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아이의 에너지는 아직 남았는데 온종일 집안일하고 운동하고, 글을 쓴 내겐 에너지가 얼마 없다. 아이의 노는 모습을 자장가 삼아 내가 먼저 기분 좋은 잠에 빠질 것 같았다.

“율아, 엄마 먼저 잘게~ “

노래도 불러주고, 옛날 얘기도 들려줘야 하는데....

엄마가 먼저 자는 건 왠지 배신 같지만 어린날의 단잠도,  다 큰 어른의 단잠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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