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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25. 2019

산타가 디녀 갔을까?


‘언제까지를 어린아이라고 생각해?’ 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산타를 만났다고 믿을 때까지’라고 얘기할 것이다.

 ‘너는 언제까지 산타를 믿었니?’라고 묻는다면

‘직접 만난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다만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날이 기억나긴 한다.

어릴 적 우리 식구는 바닷가 마을에서도 한참 외딴곳에 떨어진 회색 지붕 집에 살고 있었다. 마을로 가는 길조차 따로 없어서 썰물에는 바닷가를 따라, 밀물에는 논두렁을 따라 걸어야 마을까지 갈 수 있었다. 이십 호 남짓의 마을에 도착한다고 해도 시내로 나갈 방법은 많지 않았다. 하루 여섯 번 오는 시골 버스 시간에 맞추어 산 중턱에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올라가거나,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는 방법 외에는. 산간벽지도 아니면서 시내와 소통이 쉽지 않은 곳이니 꽤나 오지였던 샘이다.

엄마 아빠가 저녁 모임에라도 가시는 날에는 외딴 회색 지붕 집에 동생과 단 둘이 남아 있었다. 꼭꼭 잠그긴 했어도 얇은 현관문은 바람에 위태롭게 덜컹거렸고, 밤은 무서웠다. 동생이 먼저 잠이 들면 겁이 더 커졌다. 졸려 눈을 비비는 동생을 일으켜 세워 더 놀자고 괴롭힌  건 늘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해의 크리스마스이브에도 그랬다. 저녁 모임에 가신 엄마 아빠가 안 계신 집에 둘이 덩그러니 남았다. 열 살이던 나는 아직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선물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궁금했다.

동생: 누나야 내일 자고 일어나면 선물 받을까?
나: 나는 좀 많이 울었는데 이번에....
동생: 나도... 그래도 착한 일도 몇 개 했는데~
나: 착한 일을 더 많이 했으니까 선물 받겠지?
동생: 그럼 양말을 걸어놓자
나: 그래, 제일 큰 거 찾아보자

옷장을 뒤진 끝에 우리 집에서 발이 제일 큰 아빠의 양말을 찾았다.

동생: 누나야 근데 이거 어디 걸지?
나: 크리스마스트리 이런데 걸어야 하는데...
동생: 우리 집에는 없잖아.
나: 음.... 그럼 일단 여기 옷장에 걸자.


산타할아버지가 발견하기 쉽도록 옷장 손잡이에 양말 두 개를 겨우 걸어놓았다. 꼭 선물을 받길 바라며.

동생: 누나야, 근데 산타는 언제 오지?
나: 지금 막차 끊겼지?
동생: 응. 못 오는 거 아이가?
나: 새벽에 첫차 타고 올 수도 있잖아.

      우리 동네도 오긴 오겠지?
동생: 오면 좋겠다~~

눈이 오는 동네가 아니니 루돌프의 썰매는 못 올 것이고, 산타가  우리처럼 시내에서 버스를 타야 우리 마을에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버스에 내려서도 마을을 지나 논두렁을 건너 제발 우리 집을 빼먹지 않고 꼭 다녀갔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빌었다. 기도하던 두 손을 모으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왔다.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당연히 양말 확인이었다. 양말 속에 뭔가가 있었다. 산타가 정말 다녀간 것 같았다. 동생을 흔들어 깨웠다. 눈 비비며 일어난 동생도 양말 속에 있는 뭔가를 보며 활짝 웃었다. 양말 속에서 나온 것은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와 백 원짜리 세 개였다.

나: 이 돈을 산타가 주고 갔을까?
동생: 선물은 무거우니까 우리 동네까지는 못 들고 왔겠지~
나:맞다! 그랬겠네~
동생: 누나, 이걸로 과자 사 먹을까?
나: 그래! 이따가 과자 사러 가자.
동생: 산타 할아버지가 과자 사라고 준 거네.
나: 근데~아빠 아닐까 혹시?
동생: 아빠는 밤에 깜깜해서 양말 못 봤을 건데.
나: 그런가.

크리스마스 아침 우리도 산타의 선물을 받았다는 게 기뻤다. 상상했던 커다란 선물상자는 아니었지만 아이에 맞게 선물도 달랐겠지. 하루 종일 동전을 짤랑이며 동생과 다투지 않고 놀았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 모임에 참석했다 우리 집으로 온 산타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자신은 알려준 적 없는 산타의 존재를 믿고 있는 아이들의 천진함이. 선물은 따로 준비하지 못했지만 주머니를 뒤지니 마침 동전 몇 개가 남아 있어 양말 두 개에 나눠 담으며 잠자는 아이들을 한번 봤겠지.

다음 해부터는 더 이상 양말을 걸어두지 않았다. 산타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멀어도 너무 먼 우리 집까지 오느라 선물 배달을 해야 하는 온 밤이 다 지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엄마 아빠가 힘들까봐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어린아이는 훌쩍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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