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기 대회에 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한강 고수부지의 잔디밭에 앉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스타일대로 멍을 때린다. 개성 넘치는 분장을 한 사람들은 물론, 나이 어린아이들까지 참가자도 다양하다. 저마다 한강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동안 심박수를 측정해 가장 안정적인 사람이 우승자가 된다. 그 해에는 단발머리 여중생이 우승자로 뽑혔다. 수상 소감을 묻자 대답이 기가 막혔다.
“엄마가 신청해서 오게 되었는데요. 지금 시험기간인데 교과서만 보면 멍 때리게 돼서 오늘도 비장의 무기로 교과서를 가져왔습니다.”
우승 학생의 엄마는 일등 먹고 온 딸을 보고 기뻐하셨을지 열 받았을지 모르지만 아마 전자였을 것이다. 매일 공부해라 잔소리해도 책 펴고 앉아 딴생각하는 딸을 보면 속이 터졌겠지. 아마 엄마의 레퍼토리는 이랬을 것이다.
“어디 딴생각하는 대회 없냐? 거기선 네가 1등일 거다! 제발 이제 그만 공부 좀 해라”
그런데 마침 멍 때리는 대회를 발견하고 자신의 딸이야말로 멍 때리기 영재이니 망설이지 않고 신청서를 썼을 것이다. 엄마와 중학생 딸이 부둥켜안고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거실 풍경을 상상하니 나도 기분이 덩실거렸다.
시간은 참 이상하다. 분명 모두에게 똑 같이 주어지는데 어린 날의 시간과 어른이 된 후의 시간은 다르게 느껴진다. 어린 날은 하루가 길었고, 놀고 싶었고, 그래서 헤펐다. 나도 책상 앞에서 공부한 기억보다 딴생각 한 기억이 많다. 오늘 놀아도 내일은 오니까. 지금은 하루가 정말 빠르고, 1년이 금방이고, 늘 시간이 모자란다. 쉴 틈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마음이 고달픈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실제 뇌과학자들은 멍 때리기가 얼마나 뇌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수많은 연구를 통해 발표한 바 있다. 고마운 것을 생각하며 천천히 산책할 때, 아무 생각 없이 멍 하게 있을 때, 등산을 할 때(올라가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할 수 없는), 달리기를 할 때(달리는 것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는) 뇌가 건강해진다고 했다. 공백과 같은 짧은 시간을 거치면 마음도 정화된다고 했다.
넘치는 게 시간이던 시절이 지났다. 여전히 같은 시간을 가졌지만 마음이 급하다. 이즈음 나는 시간의 사치를 좀 부려보기로 했다. 분 단위로 쪼개 쓰는 나의 시간 한 조각을 잘라 오늘부터 멍을 좀 때리겠다. 어린날처럼 싱그럽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