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겨울방학을 시샘이라도 하는지 추위가 매서워졌다. 추위와 함께 감기까지 신호를 보내 방학을 했지만 매일 방콕이다. 율이는 좋아하는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거나, 자동차가 나오는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자동차 스티커 붙이기 놀이를 하며 논다. 그렇게 놀아도 무료해지면 거실 창 너머 도로를 구경한다. 택시도 지나가고, 트럭도 지나가고 운이 좋으면 제일 좋아하는 경찰차도 지나간다. 어린이 통학 버스가 지나가면 흥분한다.
"라니다~~ 엄마~~ 라니다~~~"
꼬마버스 타요의 캐릭터 중 노란 버스 이름이 '라니'이다. 타요를 함께 보는 엄마는 안다. 스쿨버스 이름은 라니, 녹색 마을버스 이름은 록이, 빨간 광역버스 이름은 가니, 주인공 파란 버스는 타요라는 걸. 아이는 실제 말을 걸어오지 않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반가워하고 이름을 불러준다.
집 앞을 지나가는 파란 버스를 타면 미술관에 갈 수 있다. 좀 더 가면 겨울 철새가 모여드는 공원에도 갈 수 있다. 추위와 감기 탓이라며 매일 집에서 방학을 흘려보내는 게 미안하던 참이었다.
“타요를 타러 가자”
단단히 옷을 챙겨 입고 아이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바람이 매서운 동네답게 모자를 붙들 만큼 센 바람이 분다. 백 미터 남짓 떨어진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을 재난영화처럼 바람과 맞서 싸우며 해쳐나갔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타요를 기다린다. 신이 난 아이는 발을 까딱이며 타요버스 주제가를 부른다. 드디어 버스가 도착했다. 타요에 아이를 안고 탔다. 먼저 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놀란 아이는 내게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는다. 아이를 꼭 안고 타요가 우리를 안전하게 미술관까지 데려다줄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몇 정거장 더 가 미술관 앞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는 휴~ 한숨을 쉰다. 타요에서 내려 아쉬울 줄 알았는데 많이 긴장했었나 보다. 타요는 인사도 없이 쌩 달려가고, 아이와 나는 정류장에 서서 타요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타요를 탔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즐거워하지 않는다. 여전히 만원 버스에 가득한 사람들을 구경하며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는다. 애니메이션처럼 말을 걸어오고, 노래 부르지 않는 타요가 낯설었을까? 바쁘게 달리고, 무뚝뚝한 모습에 놀랐을까? 동심을 뭉개 뭉개 피워주고 싶었는데 혹시나 실망을 했을까 마음이 쓰였다.
동심으로 가득한 아이는 어느 날 진짜 세상을 하나씩 발견할 것이다. 따뜻한 우리 집, 다정한 선생님이 있는 어린이집, 키 작은 미끄럼틀과 그네가 있는 놀이터. 아이의 세상을 벗어나 언젠가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 싸늘하게 대하는 눈길, 자신의 키보다 높은 장애물들을 만나겠지.
아직 파란 버스가 '안녕, 반가워'라고 인사하는 타요인 줄 알지만 타요는 그저 우리 마을과 강 건너 해수욕장을 따라 달리는 버스일 뿐이란 걸 알게 될 것이다. 이제 곧 말을 잘하게 되면 그 수많은 간극들에 대해 질문하겠지. 그때 흥미롭고 따뜻한 설명을 해주고 싶다. 어쩌면 흥미로운 진짜 세상을 발견하는 동안 아이는 세상을 헤쳐나갈 용기와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치만 타요가 진짜 말을 할 줄 모른다는 건 아직까지는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