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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06. 2020

방학이 끝나는 날

일주일의 방학을 마치고 새해 첫 등원하는 날이다. 느긋하게 게으름을 만끽하던 방학이 끝나니 다시금 분주한 아침이다. 잠에서 깨어 거실로 걸어 나오는 아이를 안으며 오늘은 어린이집에 가자 말했다.


"무서워~"

"어린이집 가기 싫어?"

"무서워~~"


잘 적응한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이제 좀 익숙해졌나 했다. 방학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어린이집은 다시 엄마가 없는 낯선 곳으로 바뀌었나 보다.


"율이 선생님이랑, 민서, 하준이 친구들도 있잖아.

 신나게 놀자~"


겨우 다독이긴 했지만 '무서워'라고 말하는 아이의 마음속을 알 것 같아 가슴이 시리다.



매일 잠자는 시간에는 온 집의 불을 끈다. 재미있게 보던 TV 애니메이션도 끄고 모두가 잠잘 시간임을 알린다.


"자~ 깜깜 시작한다~ 율이 얼른 방으로 달려가~"


아이는 깜깜이 시작된다는 말에 흥분하며 후다닥 방으로 뛰어간다. 깜깜은 온 집의 조명을 모두 끈 그야말로 암흑의 시간이다. 눈이 아직 어둠에 적응하기 전이니 앞이 보이지 않아 익숙하던 집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된다. 불을 모두 끄고 아이가 뒹구는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그제야 깜깜이 되기 전에 같이 자고 싶은 장난감 자동차를 가져오지 못했단 걸 알아챈다.


"엄마~ 빠방~~"

"율이 빠방 안 가져왔어?"

"응"

"그럼 얼른 거실에 가서 빠방 친구 데려 와~"

"엄마 같이~~ 무서워~~"

"알겠어 엄마랑 같이 가자"


아이 손을 잡고 살금살금 걸어 식탁을 지나고 소파를 지나 장난감 바구니 앞에 도착한다. 그새 어둠에 조금 익숙해진 눈으로 아이는 재빠르게 자동차 하나를 고른다. 어린아이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나 보다. 내 눈에는 형태만 어렴풋이 보이는 자동차를 들고 레미콘인지, 포클레인인지, 크롱 바빵인지 정확하게 얘기한다. 우리는 다시 손을 잡고 발로 거실 바닥을 더듬어 가며 방으로 돌아온다.


"율이 용감하네~ 깜깜해도 빠방이 잘 찾네~"

"에이~ 뭘~~"

"엄청 씩씩하니까 하이파이브할까?"


짝!


"엄마, 깜깜하지? 무서워~"




어둠 속에서는 친근하던 사물들이 달라 보인다. 매일 타고 노는 미끄럼틀은 거대한 공룡이 되고, 천장 모서리의 센서는 감시하는 괴물의 눈 같다. 방문에는 달 빛을 받은 블라인드의 틈들이 마녀의 숲 속처럼 흔들거린다. 벽 여기저기에는 밤의 전령들이 손바닥을 펼쳤다 몸을 웅크리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아이의 눈에 비치는 방 안의 풍경은 이럴까? 매일 엄마 옆구리에 딱 붙어 잠이 드는 겁 많은 꼬마이면서도 장난감 자동차를 찾아올 때의 용기를 생각하면 기특하다. 물론 엄마의 손을 잡고 있긴 하지만 용기 내어 거실까지 나갈 수 있는 씩씩함을 나는 매일 칭찬해주곤 한다.


"엄마 생각엔, 율이가 로보카 폴리나 카봇보다 용감한 것 같아"



새 학기 처음 들어선 교실은 낯설었다. 네모나고 어색한 풍경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곤 했다. 아이의 첫 등원도 그랬겠지. 아이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두려움이 '무섭다'는 단어가 되었을 것이다. 그치만 나는 안다.  캄캄한 거실에서 좋아하는 장난감 자동차를 꼭 쥐던 용감한 꼬마를. 그때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좋아하는 장난감, 좋아하는 놀이들을 얼른 찾아 마음껏 뛰어놀고 있을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막대사탕과 하이파이브를 준비해놓고 하원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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