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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08. 2020

부산에서 떡볶이를 먹는다는 것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이다. 누군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 물어보면 1초의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 매콤 달콤한 맛이 입을 통해 몸에 번지면 마음이 스르르 녹는다. 많은 류의 매콤 달콤함을 좋아하지만 떡볶이가 주는 행복에 비할 수가 없다.  그런 내가 부산에 살게 된 건 어쩌면 운명처럼 떡볶이의 끌어당김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떡볶이가 맛있는 부산에 살고 있어  언제든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떡볶이는 언제나 매콤 달콤하지만 지역마다 다른 맛이기도 하다. 동네마다 자신만의 특색 있는 떡볶이가 있고, 그 지역의 떡볶이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부산 떡볶이는 어깨에 힘을 좀 줘도 될 만하다. TV 프로그램에 소개가 많이 되면서 이제는 그 특징이 많이 알려졌지만 내가 처음 부산 떡볶이를 맛본 1994년도쯤에는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몇 편의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나고 자란 동네는 시골 중의 시골이었다. 학교 앞에 분식집이 있을 리가 없었고, 삼대가 함께 사는 경상도 가정에서 식사 시간 분식을 먹는다는 것도 상상이 잘 안 되는 일이었다. 떡볶이를 처음 먹은 때가 초등학교 5학년 방학 때 시내에 사는 이모 댁에 놀러 갔을 때이니 입문이 엄청 늦은 편이다.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떡볶이와 함께 떠올릴 일이 어린 나에겐 거의 없다.

중학교 2학년 때 고모를 따라 부산에 갔다. 볼일을 마친 고모는 나를 데리고 남포동 먹자골목으로 갔다. 죽 늘어선 가게 입구에는 저마다의 냄비들이 연기와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분식집, 크로켓 집, 호떡집. 한발 떼기가 쉽지 않을 만큼 음식 포스가 넘치는 집들이었다. 고모와 나는 한 분식집 앞에 멈추었다. 시뻘건 떡볶이와 한 솥 가득 꼬치 어묵, 그 옆으로 튀김 산이 펼쳐져 있었다. 한쪽 테이블에 자리 잡은 우리 앞에 떡볶이 한 접시와 튀김, 어묵 국물이 놓였다. 고모는 내 손바닥보다 더 기다란 떡을 포크로 잘라 먹어보라고 했다. 입안 가득한 매콤 달달함은 충격적이었다. 너무나 맛있어서 몇 접시라도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이 짧다는 소린 들었어도 식탐이란 게 있어본 일이 없는데 이날은 달랐다. 중2에 초딩 입맛을 발견한 날이었다.

커서는 수없이 많은 떡볶이를 먹었다. 부산에서 대학시절을 보낸 네 해동안 제일 좋았던 건 언제든 부산 떡볶이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무채의 달큼함과 고춧가루의 숙성된 매콤함이 배인 소스에 푹 끓인 가래떡을 입안 가득 베어물고 오물거리면 세상 모든 행복이 내 뱃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떡과 떡 사이에는 반드시 곤약을 하나 먹었다. 떡볶이 국물에 빠진 곤약은 네 맛도 내 맛도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떡의 담백함 보다 옅고, 어묵의 달짝지근함을 가셔 준다. 분명 떡볶이를 먹고 있는데 디저트를 먹는 느낌이다.



아이를 낳고 육아가 지칠 때 남편은 가끔 혼자 보낼 몇 시간을 선물로 주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라며 준 시간에 자주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먹던 떡볶이를 거의 먹을 수 없었던 나날이다. 가끔 아이 자는 시간 남편과  배달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해 먹긴 했지만 열기를 뿜어내는 분식집 솥단지에서 금방 뜬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홀로 떡볶이를 먹는 시간은 구원 같았다. 한 입 먹고 한 숨 한번, 또 한입 베어물고 눈물 바람 한번 하며 먹었다. 좋아서 그랬다.


매콤한 맛에 속이 뚫린 건지 먹고 나면 속이 개운했다. 누가 보면 사연 있는 여자 같았겠지만 육아의 고달픔을 몸으로 겪어내는 여자치고 사연 없는 여자는 없다. 체기처럼 가슴을 누르던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스스로 내려가곤 했다.



부산에 살아서 좋은 게 뭘까 생각하다보니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떡볶이다.
떡볶이를 먹은 날은 늘 좋다. 마음이 고달픈 날 먹으면 더 좋았다. 오늘도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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