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운동을 간 날은 몸이 먼저 안다. 목을 돌리기만 해도 우두둑 소리가 나고 손을 쭉 뻗어보지만 발끝이 겨우 잡힐락 말락 한다. 굳어있던 근육들을 매일 쭉쭉 늘리고 사용하며 조금씩 유연 해지는 것은 운동의 큰 보람 중 하나이다. 발레를 배우던 시절에는 나도 배우 강소라처럼 다리를 일자로 쭉 찢은 사진을 한 장 남겨보고 싶어 매일 가랑이가 찌릿한 고통을 참으며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아이와 방학을 보낸 후 일주일 만에 겨우 필라테스 수업에 나간 날도 온몸이 아우성을 쳤다. 런지 동작 30개쯤은 이제 인상 찌푸리지 않고 할 수 있을만한 실력이 됐는데 이날은 달랐다. 열 개를 채우기도 전에 허벅지가 후덜거렸다. 몸통을 돌리는 동작에서는 평소의 절반도 돌아가지 않았다. 옆에 선 다른 사람들은 매일 꾸준히 운동했는지 런지도 힘차게 상체도 유연하게 틀었다.
운동이 잘 되지 않는 날은 모든 게 유연성의 탓인 것만 같다. 어느 날부터인지 운동의 효과는 유연성이나 복근의 정도로 판단하게 되었다. 뻣뻣한 몸을 타고났지만 운동을 하면 유연해질 것 같았다. 유연하면 운동을 더 잘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 유연성은 정확한 운동 자세를 잡는데 도움이 된다. 몸이 다치는 순간을 예방할 수 있기도 하고. 유연성이 운동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한 시간 동안 수많은 동작을 반복하면서 보람보다 우울함이 커지기는 오랜만이다. 대게는 운동을 하는 동안 마음이 가벼워졌고, 몸도 더 부드러워졌다. 이날은 동작을 이어갈 때마다 실망감이 몰려와 즐겁지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매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말을 걸어왔다.
“회원님, 오늘따라 기운이 없어 보여요”
“오랜만에 나왔더니 동작을 못 따라가겠어요.”
“동작은 문제없이 잘하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리도 쫙쫙 찢어지고, 상체도 유연한데 나는 너무 뻣뻣해서 걱정이에요.”
내 얘길 듣던 선생님은 요가 수련을 위해 인도로 갔던 경험을 얘기해 주셨다.
필라테스와 함께 요가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사실 오랜 기간 요가 수련을 해오셨다. 언젠가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인도로 수련을 갔다고 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과 한 달 가까이 수련을 하던 선생님은 무척 답답했다. 수업에서 배우는 동작은 자신도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배우자고 시간과 돈을 들여 인도로 간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요가 강사이기도 하고 좀 더 정확하고 새로운 동작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아쉬움이 컸다. 수련이 막바지에 이를 때쯤 선생님은 인도의 선생님에게 부탁했다.
“딱 한 동작 만이라도 완벽하게 마스터하고 싶어요.”
인도 선생님에게 들은 대답은 의외였다.
“묘기를 부리고 싶다면 서커스를 배우시면 됩니다.
좀 덜 유연하다고 잘못된 동작이 아니에요.
자신의 동작을 믿고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어떻게 가르치나요?”
내가 배우는 운동인 필라테스는 요가와는 완전히 다르다. 비슷해 보이는 동작이 많지만 호흡법부터 동작에 기대하는 목표에 차이가 난다. 다른 운동이지만 선생님이 내게 하고 싶었던 얘기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어제까지 뛴 지점이 오늘의 출발점은 아니다. 오늘은 더 뒤에서 다시 어제의 길을 뛰어갈 수도 있다. 몸이 고달픈 날은 뛰지 못하고 걸을 수도 있다. 오늘의 나를 믿는 것이 중요했다.
운동하는 매일이 그럴 것이다. 운동만이 아닌 나아가는 모든 삶이 그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