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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Jan 12. 2020

내게 순간이동 초능력이 있었다면

만화 속 영웅처럼 초능력 한 가지를 가질 수 있다면 ‘순간이동’ 능력을 갖고 싶다. 지루하고 힘든 순간을 견뎌야 할 때 초능력이 있었으면 생각한다. 직장에 다닐 때는 출퇴근길에 순간 이동하고 싶었다. 특히 온몸의 에너지가 방전 상태인 퇴근시간에는 흔들리는 전철에 서 있는 시간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회사 빌딩을 나서며 옛날 코미디처럼 점프하면 제일 편한 내 방 침대에 착지하고 싶었다.


고향집에 내려갈 때도 그랬다.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네 시간 달리면 고향 통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로 금요일 밤 12시에 출발하는 심야버스를 탔다. 막히는 고속도로 상황을 피해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해서였다. 어쩐지 고속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끝없이 뻗은 아스팔트 도로도,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일도 좀이 쑤신다.


명절의 귀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서울에 살았던 첫 해에는 고속도로가 지금처럼 잘 연결되어 있지 못했다. 그해 추석에 집으로 가려고 저녁 다섯 시에 탄 버스는 다음날 아침 여덟 시에 터미널에 나를 내려주었다. 비행기를 탔더라면 유럽까지도 날아갈 수 있는 시간이다. 무지막지한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야 할 때 정말이지 순간이동이 간절하다. 마치 당연히 있어야 할 능력을 얻지 못한 것처럼 억울하기까지 하다.


©unsplash


가끔은 내게 순간이동 초능력이 생긴 것 같은 경험을 할 때도 있다. 어제가 그랬다. 아침에 통영 집에 갈 일이 있었다. 며칠 밤잠을 제대로 못 잔 상태라 피곤했지만 새벽 버스를 탔다. 아직 해도 뜨기 전이라 하늘 끝에 둥그렇게 걸린 달이 보였다.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니 막 출발한 버스는 낙동강을 지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시간이라 생각했다. 눈꺼풀이 무거워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니 썰물의 자갈밭이 드러난 바닷가를 지나고 있었다. 통영 바다다. 한 시간 삼십 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순간이동을 한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시간을 번 느낌에 신났다. 잠은 시간의 허리를 배어낸 듯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 지루함도, 고통도 없이.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니 친정엄마가 손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깊은 잠에 빠진 동안 마중을 나오셨나 보다.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에 엄마를 만나니 행복했다. 버스에서 순간 이동한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기분 좋음이다. 순간이동했더라면 없었을 순간일 것이다.


시간은 세상 모두를 태우고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부모님은 딸 만날 기대에 설렜을 것이다. 어딘가에선 시간이 더디 흐르길 기도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순간이동이란 초능력은 가능할 리가 없다. 되지도 않을 것을 푸념하며 살아가는 나를 또 이렇게 발견한다. 나는 왜 이 나이 먹도록 어리석은가 기가 차 피식 웃음이 나온다.


모두와 함께 사는 시간이란 사실이 위로가 된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뭐’라고 생각해버리면 단념도 슬픔도 짧은 것 같다. 좋을 때 나보다 더 좋은 이도 있을 것이다. 슬플 때 나의 슬픔은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만큼 괴로울 이 앞에 무안한 상황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지루함과 고통을 벗하는 것이 오히려 나았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마주칠 때마다 뛰어넘어버린다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이었을까.  누군가를 위한 걱정, 애쓰는 마음, 단단해지는 시간, 반가움 그런 빛나는 소중한 보물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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