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중 아이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눈 아래가 퉁퉁 부어 아픈 기색이 돌았다. 이마를 짚어보니 뜨끈뜨끈했다. 얼른 체온계를 가져와 재니 39도가 넘는다. 해열제를 먹이고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혔다.
아이는 잘 놀고 잘 먹었지만 고열이 나는 것은 분명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날 밤은 잠 못 이루겠구나 싶었다. 예상대로 밤새 열이 오르내렸다. 열성 경련의 이력이 있다 보니 열이 나면 걱정이 크다. 내 심장과 위와 간과 쓸개에는 온통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해 배가 묵직한 기분이다.
밤을 꼴딱 새우고 다음날 병원으로 갔다. 해열제 수액이라도 맞으면 열이 좀 빨리 떨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기침도 콧물도 없이 열만 나는 상황이라 유행하는 독감에 걸렸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독감은 아니었다.
수액을 맞고 집으로 와서 밤새 못 잔 아이와 나는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곯아떨어졌다. 한 시간쯤 잤나 싶었을 때 아이가 끙끙대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얼른 체온을 재보니 다시 39도가 넘어 열이 치솟고 있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얼른 짐 가방을 쌌다. 입원을 하러 다시 병원으로 갔다.
아이가 아프면 고민에 지체하지 않고 행동도 민첩해진다. 잠을 못 자도 밥을 못 먹었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어떤 근육에서 나오는 힘인지 나도 몰랐던 에너지가 발산되곤 했다. 그 에너지로 아이의 회복을 위해 온전히 나를 썼다.
아동병원은 늦은 시간에도 한 겨울 감기로 아픈 아이들로 가득했다. 다행히 입원실이 남아있어 입원 수속을 밟았다. 병동으로 가기 전 링거를 맞기 위해 혈관 주사를 꽂아야 한다. 아이의 작은 손목을 이리저리 만지며 간호사는 혈관을 찾으려 애를 쓴다. 낮에 병원에 왔을 때도 만났던 간호사다. 낮에 수액을 맞느라 이미 여러 곳에 바늘을 찔렀던 터라 혈관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당황한 모습이 드러난다.
아이는 이미 주사실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자지러지게 우는 중이다. 우는 아이의 두 발을 내 무릎 사이에 끼우고 두 팔을 꽉 쥐어 안는다. 움직이지 않고 조금만 참으면 된다. 아이의 두려움은 이미 한계를 넘은 지 오래다. 말로는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고 그 어떤 달콤한 사탕과 젤리와 주스로 유혹해도 주삿바늘의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다. 이제까지 침착하던 나도 떨리기 시작한다. 간호사가 얼른 혈관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녀의 침착함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얼른 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끝내고 아이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고 싶다.
기도의 힘이 약했는지 간호사는 다시 한번 아이 손목에 바늘 자국을 남긴 채 혈관 찾기에 실패했다. 아이의 작은 손목에 벌써 네 군데나 시퍼런 멍이 들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다 나도 눈물이 흘렀다. 이제까지의 침착함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아이를 꼭 안은 내 등도 땀으로 옷이 다 젖었다. 30분을 넘는 사투 끝에 결국 입원병동에 근무하는 노련한 간호사를 호출했다. 다행히 다음번 시도에 수액 연결에 성공했다.
여러 번 시도했던 처음의 간호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미안할 일은 아니다. 아이가 울고 엄마가 우는 상황에 의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처음도 있는 것이다. 간호사에게 처음 있는 실패를 경험한 당사자가 내 아이라는 생각에 속이 상했지만 그 역시 다른 선택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안함에 병실까지 안내하며 동행하는 간호사에게 마음이 쓰였다. 괜찮으냐고 물었다. 잘 못해서 그런 것 아니니 속상해하지 말라고 다독여주었다. 퇴근시간 다 되어 찾아온 어린 환자를 돌보려다 힘든 마음으로 돌아갈 그녀가 마음에 걸렸다.
입원을 해서도 밤새 고열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수시로 점검하는 야간의 간호사들과 함께 또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새벽이 되니 무시무시하던 고열은 기세를 낮추었다. 잠 깨자마자 병원으로 온 남편과 교대를 하고 병원을 나섰다.
새삼 아동병원을 지키는 이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생각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인 엄마 아빠는 당연히 함께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의사나 간호사는 직업이기는 해도 매일 수십 명의 아픈 이들과 가족을 대할 것이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자주 마주할 것이다. 매사에 겁이 많은 나는 감히 생각지도 않을 직업이다. 그들에게도 되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에너지 같은 게 있는지 궁금했다.
고마운 존재들이 아이를 키운다. 이 아픔이 지나면 아이는 또 한 뼘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