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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Oct 28. 2019

서른이 되기 전에 수영 배우길 잘했다

아득바득 이십 대를 살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나이는 막상 되고 보니 잘 안 되는 것이 더 많았다. 꿈을 펼치고, 자유를 만끽하고, 도전하는 나이라며 이십 대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십 대가 훌쩍 지난 세대들이다. 실제는 도전이라는 이름 뒤에 직장을 찾기도, 돈을 벌기도, 사랑을 하기도 서툴고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아직 내가 뭘 하고 살지도 모르겠고 어떤 남자랑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직장에서는 동기들에게 밀리기 싫어 독하게 일했고, 주말이면 좋은 남자를 찾느라 소개팅을 열심히 했다.

스물아홉 살의 어느 날부터 수영을 배웠다. 새벽 별 보고 퇴근하는 날도 새벽 수영을 하러 나갔다. 매일 아침 일어나기 싫어 이불을 돌돌 마는 몸뚱이를 기필코 물에 떠 보겠다는 의지가 이기는 나날이었다. 의지의 승리를 생각하면 집을 나서기만 했는데도 이미 기분이 상쾌했다. 실제의 수영은 쉽지가 않았다. 초급 레인에는 자유형을 배우는 사람들이 대여섯 명 있었다. 강사가 시키는 동작대로 팔다리를 휘저으며 앞사람의 발을 따라가다 보면 뒤쫓아 오는 사람의 손이 내 발에 걸렸다. 뒷사람의 손이 내 발에 걸리면 조급했다. 앞으로 나가고 싶어 팔을 더 세게 저었다. 발장구도 더 힘차게 쳤다.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할수록 몸은 뻣뻣하고 숨이 찼다. 결국 반도 못 가서 꼬르륵 가라앉았다.

그 무렵 일은 자유형보다 몇 배나 힘들었다. 당장 코 앞에 닥친 경쟁 프리젠테션이 서너 개는 있었다. 남의 회사와 경쟁해서 어떻게든 이겨야 했다. 동료들의 아이디어를 이겨야 나의 존재감이 빛날 수 있었다. 그러려고 매일 새벽까지 아이디어를 쥐어짜며 광고 카피를 썼다. 나는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어디 가서 광고주 만날 때 이름만으로 기가 죽는 사원 딱지를 얼른 떼고 싶었다. 대리도 되고 과장도 되고, 차장도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더 힘내서 앞으로 쭉쭉 나아가야 했다.

쭉쭉 나아가고 싶은 마음은 수영을 할 때 더 간절했다. 중간에서 꼬르륵 가라앉을 때마다 젊은 수영강사는 옆에 와서 ‘힘 빼세요’를 외치며 어깨를 탁 쳤다. 어떤 때는 다리를 치기도 했다. 더 힘껏 뻗어도 앞으로 안 나가는데 자꾸만 힘 빼라는 말에 수영은 더 어렵게 느껴졌다.


야근을 힘들게 하고도 수영을 간 어느 날이었다. ‘오늘은 좀 살살해야지. 팔 저을 힘도 없다.’ 생각하고 수영장 차가운 물에 쏙 들어갔다. 초급반 회원들이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내 차례는  여섯 명 중 다섯 번째였다. 속도가 빠른 회원들부터 물살을 갈라 앞으로 쭉쭉 나갔다. 여섯 번째 회원은 이제 막 보드판을 떼고 맨몸 수영을 시작한 아주머니여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미끄러지듯 몸을 물 위에 맡기고 슬렁슬렁 팔을 저었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보다는 물 위에 엎드려있겠다는 의지로 물살을 밀었다. 그런데 웬일로 중간쯤까지 갔는데도 숨이 차지 않았다. 어느 틈에 레일의 맞은편 벽이 손 끝에 닿았다. 그렇게 아득바득 자유형을 익히려고 물장구를 쳐도 안되더니 힘을 빼니까 안되던 동작들이 한순간 되고야 말았다.

수영을 마치고 회사로 가는 길에 생각했다.

‘힘을 좀 빼야겠어. 가라앉지 않으려면'

마음 놓고 즐기는 게 힘써 싸우는 것보다 빠르다는 걸 알게 된 날이다.

그 날 이후 수영이 재미있어진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일도, 소개팅도 한결 나아진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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