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비 Nov 07. 2019

위기 상황 대처 매뉴얼


아이의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엄마의 촉은 위기 상황이 다가오면 소머즈급으로 예민해진다. 평소에는 접시까지 핥아먹는 생선 반찬을 남기거나, 놀이터에 갔는데 벤치에 앉아 있으려고만 할 때 ‘아! 위기가 오고 있구나’ 직감할 수 있다. 그날 아침 단 한번 했을 뿐인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린이집 등원 전에 병원부터 들러야 할 판이다. 남편은 호들갑이라며 옆에서 나무란다. 사레가 들린 걸 가지고 엄마가 너무 오버를 한단다.

병원에서 기침감기약을 처방받아 먹이고 따뜻한 보리차도 더 열심히 끓였다. 다음날이 되었다. 남편의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내의 촉도 엄마의 촉 못지않았다. 한사코 병원에는 안 간다는 남편을 설득한 건 다음날 아침 나의 기침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꼬맹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세 식구의 기침 소리를 집안 가득 울러 퍼지게 했다.

세 식구가 단체로 콜록거리니 일상생활에도 문제가 생겼다. 하루의 빡빡한 일정에 병원 스케줄을 끼워야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날도 늘어나 집안일을 하며 아이까지 돌보느라 오랜만에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위기다. 글도 써야 하고 나도 좀 쉬고 싶은데 낮엔 집안일 밤엔 아이 간호로 집안의 기상을 책임지는 나의 멘털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위기 상황 발생. 대처 매뉴얼 실시!

“남편~ 설거지 좀 부탁해. 나는 율이를 씻길게.”
“율이 아버님~ 청소기 좀 돌려주세요. 안방, 율이 방까지 구석구석 먼지 쏙쏙 알죠?”
“자기야~ 재활용 쓰레기 정리 부탁해. 가는 길에 음쓰도~~”


상황이 나쁠수록 서로 더 단단히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 우리 집의 위기 대처 매뉴얼이다.
남편의 최대 장점은 부탁한 일은 군말 없이 들어준다는 것이다. 매뉴얼에는 ‘부탁 시 목소리는 최대한 다정함을 담아서’라고 되어 있다. 집안일은 둘이 나눠도 아침 눈 떠서 밤에 누울 때까지 계속된다. 반으로 나눴으면 누군가는 쉬어야 하는데 알 수 없는 집안일의 미스터리다. 그래도 위기 상황 대처 매뉴얼 덕에 셋이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감기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번 감기를 무사히 넘기면 모두에게 두둑한 포상을 줄 테다. 율이는 착한 아이에게 주는 무한 젤리 상자를 열겠다. 남편에겐 야식을 허하겠다. 그리고 나는 늘어지게 낮잠을 좀 잘 테다.

우리 집안의 위기가 올 때마다 1인 다역을 해내는 남편에게 무한 감사를 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겐 너무 설레는 석 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