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엄마의 촉은 위기 상황이 다가오면 소머즈급으로 예민해진다. 평소에는 접시까지 핥아먹는 생선 반찬을 남기거나, 놀이터에 갔는데 벤치에 앉아 있으려고만 할 때 ‘아! 위기가 오고 있구나’ 직감할 수 있다. 그날 아침 단 한번 했을 뿐인 기침소리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린이집 등원 전에 병원부터 들러야 할 판이다. 남편은 호들갑이라며 옆에서 나무란다. 사레가 들린 걸 가지고 엄마가 너무 오버를 한단다.
병원에서 기침감기약을 처방받아 먹이고 따뜻한 보리차도 더 열심히 끓였다. 다음날이 되었다. 남편의 기침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내의 촉도 엄마의 촉 못지않았다. 한사코 병원에는 안 간다는 남편을 설득한 건 다음날 아침 나의 기침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꼬맹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세 식구의 기침 소리를 집안 가득 울러 퍼지게 했다.
세 식구가 단체로 콜록거리니 일상생활에도 문제가 생겼다. 하루의 빡빡한 일정에 병원 스케줄을 끼워야 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날도 늘어나 집안일을 하며 아이까지 돌보느라 오랜만에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위기다. 글도 써야 하고 나도 좀 쉬고 싶은데 낮엔 집안일 밤엔 아이 간호로 집안의 기상을 책임지는 나의 멘털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위기 상황 발생. 대처 매뉴얼 실시!
“남편~ 설거지 좀 부탁해. 나는 율이를 씻길게.”
“율이 아버님~ 청소기 좀 돌려주세요. 안방, 율이 방까지 구석구석 먼지 쏙쏙 알죠?”
“자기야~ 재활용 쓰레기 정리 부탁해. 가는 길에 음쓰도~~”
상황이 나쁠수록 서로 더 단단히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 우리 집의 위기 대처 매뉴얼이다.
남편의 최대 장점은 부탁한 일은 군말 없이 들어준다는 것이다. 매뉴얼에는 ‘부탁 시 목소리는 최대한 다정함을 담아서’라고 되어 있다. 집안일은 둘이 나눠도 아침 눈 떠서 밤에 누울 때까지 계속된다. 반으로 나눴으면 누군가는 쉬어야 하는데 알 수 없는 집안일의 미스터리다. 그래도 위기 상황 대처 매뉴얼 덕에 셋이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감기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번 감기를 무사히 넘기면 모두에게 두둑한 포상을 줄 테다. 율이는 착한 아이에게 주는 무한 젤리 상자를 열겠다. 남편에겐 야식을 허하겠다. 그리고 나는 늘어지게 낮잠을 좀 잘 테다.
우리 집안의 위기가 올 때마다 1인 다역을 해내는 남편에게 무한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