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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08. 2019

이십 년 지기 친구와 커피는 이미 충분히 마셨다 1.


제제는 나의 이십 년 지기 친구이다. 같은 고등학교, 같은 교회를 다니며 주 7일 만나 우정을 쌓은 사이이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서울의 대학을 갈 때. 우리는 지방의 한 대학에 나란히 진학했다. 학교 근처에서 제제는 자취를 나는 하숙을 하며 동네 친구로 어울려 다니기도 했다. 함께한 시간이 시간인지라 우리는 서로의 가족사, 연애사를 줄줄이 꾀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으면 어느 순간 친구가 확 줄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사회에서는 학교 때보다 만날 사람도 적거니와 같이 놀고 싶은 사람 또한 적기 때문이다.  일을 배우느라 친구에게 소원해지기라도 하면 어중간한 사이의 친구들은 자연스레 연락을 하지 않게 된다. 어느 정도 인간관계가 정리된 후에도 자연스레 연락을 하게 되는 친구도 있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시시콜콜 개인사를 꿰고 있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가 그들일 것이다. 제제는 그런 친구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로 직장일에 바빠 한동안 못 만났던 우리는 몇 년 만에 태국의 한 공항에서 만났다. 만나기 몇 달 전 서로 다른 도시에 살아 얼굴 볼 시간 한번 내기 어려우니 휴가지에서라도 보자고 약속했다. 다행히 휴가 날짜를 맞추어 나는 서울에서 제제는 부산에서 각자 티켓팅한 비행기를 타고 태국 공항에서 만난 것이다. 여행은 물 흐르듯 잔잔하고 즐거웠다.


친구 사이는 역시 같이 놀 때 빛을 발한다.


의외의 여행에 재미를 느낀 우리는 그 후 휴가지의 공항에서 만날 약속을 이어갔다. 어느 해는 제주도에서 어느 해에는 발리의 꾸따 해변에서 서핑을 배우기도 했다.

 ‘오늘은 어떤 카페에서 만날까?’ 묻지 않아도 되는 약속이 좋았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에 연애사 직장사를 디저트 삼아 수다를 떠는 시간보다 헛헛함이 덜한 것도 좋았다. 이십 년을 만났어도 볼 때마다 수다의 소재는  화수분처럼 쏟아진다. 하지만 우정이 수다와 함께 마신 커피의 양이라는 공식보다 함께 쌓은 추억의 양이 되길 바랐다. 일주일만 지나도 희미해지는 시간들이 아닌 의외의 추억을 쌓아보자고 한 것도 둘의 생각이 통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한참 제안서와 실랑이를 벌이던 어느 날이었다.

“우비, 너 요즘도 마라톤 하지?”

제제는 메신저로 나의 마라톤 안부를 물어왔다.

“그러면 다음 달에 부산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에 나가자.”
“나가자? 고? 너도 뛰게?”
“응, 한번 해보려고”

인터넷 검색창을 열어보니 다음 달 한 스포츠 브랜드에서 주최하는 단축마라톤 경기가 부산에서 열린다는 뉴스가 있었다. 광안대교를 따라 10km를 달리는 대회였다.
역시 제제다. 허리디스크를 극복하고 발리에서 서핑을 배우더니 이제 마라톤까지 도전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진 제제가 자랑스러웠다.

우리는 빛의 속도로 사라진다는 출전 티켓을 신청하기 위해 티켓 오픈 30분 전부터 각자의 사무실에서 예약 창을 열어놓고 대기 중이었다. 오전 10시 정각에 열리는 예매 창은 9시 59분 55초부터 무한 클릭을 한 덕분에 무사히 신청금 결제창까지 넘어갔다.

“예약 성공! 너 다음 주에 시간 되면 부산 내려와서 나 달리기 좀 가르쳐주라.”

그렇다. 자신만만한 출사표와 달리 제제는 태어나서 여태 체력장에서 달리기를 제외한 그 어떤 달리기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서둘러 ktx 티켓 두 장을 예매했다. 한 장은 대회 출전 전날 부산으로 가는 티켓이며 또 한장은 그보다 3주 전 달리기 훈련을 위해 부산으로 가는 티켓이었다.

(2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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