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비 Nov 09. 2019

이십 년 지기 친구와 커피는 이미 충분히 마셨다 2.

제제는 러닝화는 물론, 땀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헤어밴드와 러닝용 선글라스까지 준비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광안리 수변공원을 따라 달리는 5km 코스에서 조깅을 했다. 당연히 남들이 걷는 속도보다 느린 달리기였다. 내가 처음 달리기를 하던 날 터득한 비법이다. 천천히 달리면 생각보다 꽤 오래 꽤 멀리 달릴 수 있다. 그렇게 40분가량을 뛴 후 준비 훈련을 마무리했다. 첫 연습은 대성공이다. 제제는 앞으로 3주 동안 틈틈이 달리기 연습을 하기로 하고 각자의 대회를 준비했다.


 단축마라톤 대회가 열리는 날. 새벽에 일어나 간단한 토스트로 아침을 먹고 벡스코 광장으로 향했다. 수만 명의 인파가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제제와 나도 한껏 들떠서 포토존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으며 축제를 즐겼다. 열일곱 살이나 서른일곱 살이나 축제에서 방방 뛰는 건 마찬가지이다. 출발 지점에서 신나는 음악에 맞춘 체조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제제와 나는 조금씩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힘들면 중간에 걸어가자. 포기만 하지 말고 결승점까지 같이 가는 거다!”

우리는 뛸 수 있는 거리까지만 달리고 나머지는 걷기를 각오했다. 목표는 오로지 10km를 함께 가는 것이었다. 달리기 경력 3주의 제제에게 친구와 달릴 앞으로의 10km는 지나온 20년 보다 까마득한 거리였다.

출발 신호를 카운트 다운한 후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소떼처럼 광안대교를 향해 달려 나갔다. 우리도 대열 중간에 끼어 천천히 달렸다. 부산의 아침 바람은 시원했고 제제와 함께 달리기를 한다는 사실은 뭉클했다. 자동차로 달리던 광안대교 위를 자동차 바퀴가 아닌 두 다리로 달리니 뿌듯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서울의 다리 위를 달리는 기분과는 또 다른 뿌듯함이었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걷거나 멈춰 선 사람들을 제외하고 달리는 사람은 대부분 우리를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다. 제제는 헉헉 거리기는 했지만 아직 달릴만하다고 했다.

그렇게 7킬로미터 지점까지 천천히 달렸다. 이미 광안대교는 뛰어서 건넌 후였다. 제제는 더 이상은 못 뛰겠다며 허리를 구부리고 멈췄다. 조금만 가면 도착지점인 광안리 해수욕장이 보일 것이다.


"걸어서 가자!"


우리는 달리는 사람들에게 길을 터주고 바닷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 시간 이십 분.

제제의 첫 단축마라톤 공식 기록이다. 또 하나의 추억을 쌓은 우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완주 메달을 받고 광안리 해수욕장 모래사장을 신나게 뛰어다니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좀 걸었더니 세레머니로 뛰어다닐 힘이 남아있어 다행이었다.

몇 년 전 제제가 살고 있는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하지만 우리는 요사이 모험을 펼치지 못했다. 육아하는 아줌마에게 돌발 일정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근근이 카페에서 차 마시며 한두 시간 수다를 떠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한참은 더 각자의 삶에 집중할 것이다. 그치만 나는 안다. 어느 날 제제는 불쑥 새로운 제안을 다시 해올 것이다.  나는 기꺼이 약속 장소로 뛰어갈 것이다. 그 제안이 엉뚱하고 기발할수록 더 반가울 것 같다.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기엔 이 친구랑 같이 놀 거리가 너무 많다. 무엇보다 이십 년 지기 친구와 커피는 이미 충분히 마셨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십 년 지기 친구와 커피는 이미 충분히 마셨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