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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11. 2019

엄마 마음

정육점에 갔다. 며칠 째 밥투정을 하는 율이에게 고기라도 구워 먹일 요량이었다. 소고기를 사서 집으로 오며 율이가 밥 잘 먹는 상상을 했다. 엄마에겐 아이가 안 아프고 잘 먹고 잘 자는 게 최고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는데 집안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율이는 평소보다 기운이 없었다. 낮에 올랐던 열이 해열제로도 떨어지지 않아 점점 더 오르고 있었다. 손에 든 정육점 봉지를 돌돌 말아 대충 냉장고에 구겨 넣고 서둘러 짐 가방을 챙겼다. 아무래도 입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늦은 저녁인데도 아동병원은 아픈 아이들로 가득했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입원을 해야 할 만큼 상태가 나쁘진 않지만 집에서는 고열을 조절하기 쉽지 않으니 며칠 입원하며 지켜보자고 하셨다. 1인실은 빈 곳이 없어 다인실에 입원하기로 했다. 아동병원의 다인실은 어른 병동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어린아이들은 아프면 아픈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울음과 생떼와 기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솔직한 존재다. 무척이나 시끄럽고 주의 산만할 것이다. 아직 어린 율이가 또 다른 바이러스에 감염이라도 될까 걱정되는 마음도 컸다. 엄마 마음에는 1인실에 입원하고 싶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행히 6인 병실에 율이 외에 1명의 아이만 입원해 있었다.


준호.


율이를 안고 병실에 들어서자 웃음을 가득 담은 귀여운 얼굴의 준호가 침대로 다가왔다.


"안녕."

"안녕하세요. 이거 드세요."

"어머. 주스네. 놔뒀다가 너 먹어."

"저는 또 많아요. 이거 맛있어요. 드세요."

"그래 고마워. 너 참 다정하구나. 몇 살이니?”

“8살이요”


8살 아이의 넉살은 보통이 아니었다. 준호는 같은 병실의 친구가 된 지 10분도 안돼서 율이의 침대 곁으로 링거대를 끌고 와 앉았다. 내가 가방에서 짐을 꺼내는 동안 발을 까딱이며 율이의 말 벗이 되어주었다. 아직 제대로 말을 할 줄 모르는 율이도 다정한 형아가 좋은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나열하며 흥분했다.


“준호는 형아 있어?”

"아니요. 동생 있어요."

"그래? 그래서 준호가 율이랑 잘 노는구나”

"이제 태어난 지 한 달 됐어요."


태어난 지 한 달이 된 아이가 있는 집안을 상상했다. 엄마는 온전히 갓난아이에게만 매달려 있어도 하루가 부족할 시기이다. 그제야 30분째 준호의 침대 곁에 보호자가 없었던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8살 아이를 병원에 혼자 있게 하는 부모 마음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자 냉장고에서 음료수도 꺼내 마시고 간식도 먹는 준호는 엄마 아빠가 곁에 없어도 전혀 불안해 보이지 않았다.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율이가 밤새 열과 싸우는 동안 준호는 기침과 싸웠다. 아픈 내 아이를  두고 남의 아이를 돌볼 여유는 없었다.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올 때마다 준호의 상태를 알려주며 좀 더 자주 챙겨봐 달라고 하는 수밖에.


다음 날 아침 간호사가 1인 병실이 하나 비었다며 옮기겠냐 물으러 왔다.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짐을 챙기는데 나가려던 간호사가 준호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준호 너 형아 있지?”

“네. 동생은 없지만 형은 있어요.”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네가 알아서 뭐든 척척 잘하는구나.”


어제 준호는 내게 동생만 있다고 했는데? 아이의 가족관계는 대화 상대에 따라 바뀌기도 했다. 8살 아이의 거짓말이 맹랑하면서도 마냥 귀엽지는 않았다.

병실을 옮기며 준호에게 인사를 했다.


“준호야, 얼른 나아서 퇴원 잘해.”

“네, 안녕히 가세요.”


6명이 함께 쓰는 병실에 준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준호 엄마가 언제나 오려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홀가분하면서도 혼자 있을 아이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놀러 올게’나 ‘’ 놀러 오렴’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병실을 옮기고 반나절이 지났다. 율이는 갑갑한 병원이 싫어 놀이터에 가겠다고 생떼를 쓰는 중이었다. 병실 문이 덜컥 열렸다. 간호사인가 돌아보니 준호가 링거대를 끌고 얼굴을 내밀었다.


“율이 뭐해요?”


옮긴 율이의 병실을 혼자 찾아온 8살 아이의 대범함에 잠시 당황했다.


“어? 어.. 율이 지금 울고 있어.”

“그렇구나. 그럼 나중에 놀러 올게요.”


하룻밤 사이 친해진 동생을 만나고 싶었던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떠올리기 전에  준호를 경계하고 있었다.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한심한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렇대도 여전히 준호에게 쉽사리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얼굴에 가득한 장난스러운 웃음은 어제와 달라 보였다.  아직은 사랑받기만 해야 할 아이가 관심을 얻기 위한 방법인 듯했다. 다정해 보였던 첫인상은 어느새 씁쓸한 웃음이 되어있었다.


준호가 돌아가고 닫힌 병실 문을 보며 엄마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도 아프다. 아이가 가여워 더 잘 먹이고 더 잘 재우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었다. 밤 잠을 설치며 간호해도 너만 괜찮다면 이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이타적인 사랑이었다. 내 아이를 위해서만은 분명 그랬다.


 엄마 마음은 모든 아이를 향한 마음은 아니었다.  또 다른 아픈 아이를 경계하는 나를 보며 엄마 마음은 이기적인 것도 같았다. 준호는 몇 번을 더 찾아왔다가 병실에 들어오지 않고 돌아갔다. 어쩌면 애초에 병실에 들어올 생각은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적당히 친절한 척했다. 거리가 있는 마음이었다. 아픈 내 아이를 향한 엄마 마음과 관심받고 싶은 아이를 향한 거리 있는 마음을 끌어안고 있자니 괴로움이 몰려왔다.


 외로운 병실에서 아이를 구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준호의 엄마이다. 그녀의 엄마 마음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휴, 한숨을 한번 크게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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