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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12. 2019

세 식구와 삼시 세끼를 먹는다는 것




우리 세 식구는 요즘 24시간 똘똘 뭉쳐 지낸다. 아이가 아프다는 건 이 년이나 겪었어도 여전히 적응 안 되는 어려움이다. 내가 아프면 이불 뒤집어쓰고 혼자 며칠 끙끙 앓으면 싹 나을 텐데 아이는 그럴 수가 없다. 병은 더디게 나았고 나는 기를 쓰고 간호해도 지쳤다. 고맙게도 남편은 재택근무가 자유로운 일을 하는 덕에 지원군으로 집에 함께 있어주었다.

가사를 분담해도 식사를 챙기는 건 오롯이 내 몫이다. 꼼짝없이 삼시 세끼를 차리는 신세가 되었다. 아침에 눈 뜨면 아이에게 따뜻한 물과 과일을 먹인다. 아이가 과일을 먹는 동안 세 식구 먹을 누룽지를 끓이고 아침 반찬들도 간단히 접시에 담는다. 날이 쌀쌀해져 아침마다 먹는 누룽지는 더 고소하고 셋이 머리 맞대고 뜨거운 김을 호호 불어가며 먹으니 마음도 따뜻하다.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고 돌아서며 점심에 먹을거리를 생각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남편이 출근을 했다면 아마 빵조각 하나 물고 뛰어넘었을 끼니다. 제일 거하게 먹는 저녁을 준비하려면 힘을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저녁은 된장찌개나 생선구이, 불고기를 해 먹으면 오늘 하루도 잘 먹었다 뿌듯할 것이다. 식구들 먹는 일에 하루가 간다.

점심은 늘 문제였다. 힘을 아껴야 하는 시간에도 힘써 무엇인가 맛있는 밥을 준비해야 한다는 건 적잖이 부담이 된다. 중국집에 짜장면을 주문하면 아이도 남편도 나도 맛있게 먹을 텐데.  그런 날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열심히 김밥을 말고, 떡국을 끓이고, 볶음밥을 만들었다. 내 몸이 좀 고되야 보람을 느끼는 건 못된 습관이었다. 직장에서도 밤을 새워 일을 끝낸 후에 보람이 더 컸다. 나를 혹사시키느라 더 소중한 것들은 잊을 때가 많았다. 잠 좀 자고 내 몸이 덜 힘들면 아이에게 남편에게 한 번 더 웃어주었을 것이다.

‘내공이 여전히 부족한가’

이런 날은 꼭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는 하루 다섯 끼를 차렸어도 밝았다. 대가족의 식사는 아침상부터 잔칫집 수준이었다. 어린 시동생들 도시락도 따로 챙기고, 땡볕에 일을 쉬어가야 하는 시간이면 새참도 만들었다. 국수도 해 먹고 감자도 쪘다. 그랬어도 매 끼니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들로 온 식구가 즐거웠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마음이 했다.

‘식구들 먹일 그릇에 엄마는 엄마의 행복을 담았었구나.’

엄마를 떠올리면 내 푸념이 별것 아니라 느껴질 때가 많았다. 엄마의 따뜻한 목소리로 잘하고 있으면서 괜히 또 그런다 타이르는 것 같았다. 보통의 나날을 소중하게 보내야 한다는 걸 자주 잊는 나는 나이 마흔을 먹고도 엄마 앞에 철없는 딸이다.

오늘 점심에는 뭘 먹을까. 따뜻한 잔치국수 만들어 호로록 먹어야겠다. 율이에게 호로록 국수 빨아 당기는 모습도 보여줘 가며 낄낄 깔깔 웃으며 먹어야겠다. 웃으며 먹은 밥에 아이의 기침도 얼른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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