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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13. 2019

글 읽는 시간의 고마움에 대하여



나는 다독을 하는 스타일이다. 하루에도 여러 권을 상황에 따라 골라 읽는다. 한 번에 한권만 줄기차게 읽어내지 않고 상황에 맞게 어떻게든 읽으려다 보니  습관이 되었다. 어떻게든 읽는다 보다는 읽는 것이 즐겁다가 맞을 것이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버스에 앉아서, 약속 장소에서 만날 이를 기다리며, 일 하다가 휴식이 필요할 때, 잠자리에 누워서 책을 읽는다. 집에서 읽는 책은 양장본으로 두꺼워도 괜찮지만 밖에 가지고 나가 읽는 책은 가볍고 표지도 얇은 문고판을 선호한다. 요즘은 전자도서를 읽는 시간도 늘었다.

처음으로 책을 접한 것은 일곱 살 때 아빠가 사주신 명작동화 전집이었다. 글보다 그림이 예뻤던 백설공주, 신데렐라, 알리바바와 사십 인의 도둑을 두꺼운 표지가 너덜거릴 때까지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처음 생긴 때는 열다섯 살 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난 후였다. ‘지와 사랑’, ‘유리알 유희’ 같은 책들은 방학이면 몇 번을 반복해 읽곤 했다. 좋아하는 작가는 책을 읽을수록 늘어 박완서, 로맹 가리,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을 줄줄이 읽으며 이십 대와 삼십 대를 보냈다.

그런 내게 글 한 줄 읽을 여유가 없던 시기가 있었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한 때였다. 육아를 한다는 것은 내 의지보다 본능에 의한 움직임이 많았다. 아이를 먹여야 했고, 재우고 씻겨야 했다. 울 때는 달래주어야 했고 틈틈이 집안일을 하느라 하루가 모자랐다. 그때는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사치였고, 그래서 그리웠고 간절했다. 그랬어도 베개 옆에 박완서 선생님의 수필집 한 권을 놓아두었다. 잠시라도 짬이 나면 한 줄이라도 읽어야지 했다. 수유하다가 아기가 잠들면 아이를 안은채 어느 날은 한 문장을 읽고, 어느 날은 감사하게 한 문단쯤 읽었다. 성경을 처음 읽던 날처럼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고된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몇 분의 사치였다.

이제는 다시 책을 읽을 여유가 생겨 종일 책을 끼고 다닌다. 예전과 달리진 것은 문장 하나 읽는 시간이  얼마나 고마운 줄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줄을 쓰느라 고심했을  작가의 시간 또한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살아가며 책에 위로를 받는 때가 많다. 때로는 친구의 위로보다 읽은 문장 하나가 따뜻할 때도 있다. 모든 쓰는 이들이 고마운 이유이다. 읽는 고마움을 아는 내가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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