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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14. 2019

두통과 발레



공주이던 시절이 있었다. 일곱 살의 나. 장대비가 쏟아져도 유치원에는 레이스가 많이 달린 원피스를 입고 가야 했고, 엄마가 땋아주는 머리는 요란하면 요란할수록 좋았다. 거울을 보며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쁜지를 물었고 내 이름을 답하던 시절이었다. 자기애가 넘치던 공주 시절은 길지 않았고 오래 잊은 채 어른이 되었다.

서른일곱의 나.

핸드백 안쪽 지퍼를 열면 타이레놀 한 줄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오후 세시 언저리이면 언제나 머리가 아팠다. 한 손으로 머리를 꾹꾹 눌러도 진정이 되지 않으면 핸드백을 열어 타이레놀 두 알을 꺼내 먹었다. 1주일을 타이레놀 한통에 기대어 버텼다. 나이를 탓하며 삽 십 대 중반의 많은 사람들이 만성두통에 시달리며 살아간다고 합리화했다.

일곱 살에는 몰랐다. 서른일곱 살이 되면 혹독하게 자신을 갉아먹으며 스트레스, 만성두통과 벗하며 살게 될 줄. 삼십 대가 가기 전에 꼭 두통에서 탈출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의사는 약과 치료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생활 습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우선 잠을 충분히 잘 것.
이 때는 해외에 살고 있는 남편과 시차 때문에 매일 새벽 1시에나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자연히 잠드는 시간은 새벽 두 시를 넘기는 날이 많았다.

운동을 할 것.
이 대목에서는 할 말이 많았다. 나는 매일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의사는 달리면서 에너지를 많이 쓰는 운동보다는 근력에 집중하는 운동을 하도록 했다. 마라톤의 대안으로 필라테스를 추천했다.

식습관을 개선할 것.
다이어트도, 성인병 예방도 보너스로 따라오는 근원적인 처방이다. 뻔한 얘기들이었지만 이 뻔한 것들을 무시하며 지냈기에 몸이 아팠던 게다. 몸의 신호를 무시한 채 타이레놀에 의존하던 나를 돌아보며 우선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보기로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버스에 앉아 집 가까운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검색했다. 몇 군데 있긴 했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아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동안 길 가의 간판들을 올려다보았다. 운동할 만한 다른 좋은 곳이 있나 둘러보는 중이었다.

‘성인발레, 취미 발레’

발레교습소 간판에 눈과 마음이 멈췄다. 마치 ‘네가 찾던 바로 그곳이 여기야’라며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순간 공주가 깨어났다. 공주는 대부분의 공주들이 그렇듯 발레리나를 꿈꾸던 적이 있었다. 우리 집이 시골만 아니었어도 엄마한테 발레 가르쳐 달라고 드러눞기라도 했을 텐데..’ 일곱 살 이후로 종적을 감췄던 공주는 열여덟 살에 국립발레단의 ‘신데렐라’를 본 후 잠깐 깨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곧고 가냘픈 몸에 비현실적인 유연함은 내가 범접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기에 깨어나도 별 수 없이 다시 잠들었다. 느닷없이 서른일곱 살에 공주가 다시 깨어나리라고는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때보다 5킬로그램은 더 살이 붙었고, 더 뻣뻣해졌으며, 무엇보다 삼십 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도무지 발레에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시 잠들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코트도 벗지 않고 발레교습소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두통이 공주를 깨우는 마법의 주문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두통 덕분에  발레수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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