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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15. 2019

90이라는 아름다운 나이

포털 사이트의 뉴스 페이지 한쪽을 하루 종일 장식한 기사가 있었다. 92세 최고령 직원의 맥도널드 은퇴식 기사였다. 많은 사람들이 92세에도 일할 기회를 준 기업에 박수를 쳤고 할아버지에게는 존경 담긴 응원을 이어갔다. 


구십 살이라는 숫자는 아직 그 절반도 살지 않은 나에게 감히 상상하기 조차 힘든 나이이다. 그럼에도 구십 살이 넘어도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일의 차원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다. 그는 식민지의 그늘에서 태어났고, 전쟁을 겪었으며, 산업화 민주화라는 굵직한 현대사를 거슬러 살아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무 살의 성취감과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인터뷰를 보고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고객의 식사 공간을 정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장 주위까지 청소를 했어요. 17년 동안 한 번도 지각이나 결근한 일 없이 출근했습니다."


여느 성실한 직장인과 다를 바 없다. 몸의 나이는 구십이나 생각은 청년과 같다. 그래서 92라는 숫자는 어느 광고 카피처럼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무엇을 다시 시작해도 아직 늦지 않았다. 92세에도 아름다운 그를 보며 늦었다는 핑계로 시작 앞에 겁을 먹는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우연인지 같은 날 이생진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이생진 시인의 말을 빌어 구십 살이라는 아름다운 나이를  다시 한번 그려본다.



나이 90이 되니 알 것 같다

살아서 행복하다는 것과

살아서 고맙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이제 철이 드나 보다

이런 결말에 결론 비슷한 말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거기엔 조건이 있다

첫째 건강해야 한다는 것과

둘째 90이 되어도 제 밥그릇은 제 손으로 챙겨야 한다는 것과

셋째 밥 먹듯 시를 써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제정신으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


나는 말이 막히면 이렇게 농담 섞인 진담을 말한다


'당신도 이런 조건하에 90이 되어보라

그러면 지금의 나를 알게 될 것이니

그러나 당신도 시를 써가며 90이 된다는 조건하에'

이렇게 말하며 속으로 웃는다

90이 되니 인생 풀코스를 뛴 기분이다

시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다


- 이생진 [무연고] 머리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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