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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16. 2019

레오타드를 입을 용기에 대하여



‘첫 수업에는 레오타드와 타이즈, 연습용 슈즈를 준비해 오세요.’

드디어 며칠 뒤면 나도 발레를 배우게 된다. 그 어떤 배움보다 설레었다. 인터넷의 발레복 전문 쇼핑몰을 검색해 준비물을 구입하기로 했다. 연습용 슈즈와 타이즈 그리고 레오타드.


이름도 생소한 레오타드가 무엇인지 검색해 보았다. 쫄쫄이 원피스 수영복의 발레 버전쯤 되었다.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딱 달라붙는 수영복 모양의 발레복이었다. 발레리나를 떠올리면 순백의 튜튜가 떠오른다. 레이스에 힘이 들어가 넓게 퍼지는 아름다운 스커트. 발레 교습에는 화려한 튜튜는 필요치 않았다. 그보다 기본이 되는 레오타드를 입어야 했다.

검은색 레오타드를 골랐다. 매끈한 한 마리의 재규어를 상상하며. 2년 가까이 달리기로 다져진 몸이니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며칠 후 도착한 레오타드를 입어보는 순간 큰 오해를 했음을 알아차렸다. 아무리 힘을 줘도 탄탄해지지 않는 볼록한 뱃살, 소시지가 연상되는 팔뚝, 눈사람처럼 볼록볼록 한 허리. 이 모습으로는 다리를 일자로 찢고 무대를 날아도 전혀 우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교습소의 거울 앞에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서있을 내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발레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내가 발레리나가 될 건 아니니까. 이건 단지 운동이니까. 그 사실을 1분만 늦게 깨달았다면 절망감에 수강 취소 전화를 할 뻔했다. 인터넷에는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경험자들의 조언대로 레오타드 위에  티셔츠를 입기로 했다. 레오타드를 입을 용기를 내자 큰 산 하나를 넘은 것 같았다. 손바닥 만한 옷 그게 뭐라고 시작도 전에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다.

발레리나의 아름다움 뒤에 얼마나 혹독한 자기 관리가 있었을까.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보이는 훌륭함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공주가 될 것만 같아 설레었던 마음이 숙연함으로 바뀌었다. 발레를 배우는 동안 배와 팔이 홀쭉해지고, 마음속의 군살들도 다듬어지며 용기가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실제 그랬다.

발가락이 부러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을 이기고 한쪽 발 끝으로 설 용기. 넘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접고 과감하게 턴을 할 용기. 가랑이가 찢어지면 어쩌지 덜덜 떨며 일자 다리 스트레칭을 해낼 용기.  내 몸뚱이 하나 다루는데 수많은 용기들이 필요했다.

용기를 더 많이 낸 사람이 더 아름다운 공주가 될 수 있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레오타드도 입었는데 용기를 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발레수업은 용감한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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