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비 Nov 18. 2019

소중한 것 앞에서 언제나 불안했다


집안에 의자란 의자는 싹 치웠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집안 곳곳에 놓인 물건들이 불안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율이 목욕을 부탁하고 운동 갈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쿵......... ’

“어 율아 괜찮아?!”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는 그 후에 들렸다. 심상치 않은 소리에 욕실 문을 열었다. 남편은 우는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율이 혼자 세면대 앞 계단에 서서 놀다가 미끄러졌어.”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세면대에서 스스로 세수하는 연습을 시키느라 놓아둔 간이 계단이 문제를 일으킨 모양이다. 얼른 아이 옷을 입혀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다행히 피는 금방 멈췄고, 크게 다치지 않아서 금방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소동이 있은 후 아이의 일상적인 행동에도 불안했다. 혼자 의자에 기어올라 식탁 위에 앉아 있는 순간에도. 붕붕카를 타고  tv장을 향해 돌진하다 멈추는 순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그런 순간이 아닌 뛸 때도, 혼자 앞서 갈 때도, 미끄럼틀을 보며 흥분해 달려갈 때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만 해, 안돼

아이가 다칠까 봐, 아플까 봐 그만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는 동안 이렇게 안 되는 게 많다가 아이 성격이 모나지 않을까 또 불안했다. 결국 아이에게 하소연까지 하고 있었다.

“율아, 엄마가 걱정돼서 그러잖아. 너 다칠까 봐”
“쉬~~”

아이는 어디서 봤는지 작은 입술에 손가락 하나를 가져다 대고는 ‘쉿’이라고 했다. 순간 멈칫하고 말았다. 엄마의 불안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불안은 아이를 향한 마음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내 인생의 불안은 도처에 널려있었다. 아무리 이력서를 넣어도 합격 소식을 듣지 못했던 스물세 살의 자취방에서, 아무리 소개팅을 해도 운명의 남자가 나타나지 않았던 삼십 대의 자취방에서, 고향집으로 내려가는 한 밤의 고속도로에서 나는 불안했다.

이러다 취직 못할까 봐. 이러다 결혼 못할까 봐. 이러다 돌연 죽을까 봐.

소중한 것 앞에서 불안했다. 살아가는 일은 불안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가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직 잘 살고 있다. 소용없는 걱정을 하느라 많이도 힘썼다.

아이에게 불안한 얼굴을 더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불안을 잠재우려 뭐라도 해야 했다. 의자를 싹 다 치웠으니 어디로 기어오르다 쿵 떨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결국에는 온 집안에 바닥 매트를 깔았으니 뛰지 마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불안과 걱정이 아닌 믿어주는 마음으로 뿌듯하게 바라보는 엄마는 언제쯤 될 수 있을까.
두려움 없이 뭐든 하고 보는 아이의 용감무쌍함을 지키고 싶다.

오늘부터 불안은 쉿~!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일곱 살에 다시 공주가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