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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21. 2019

90년대 발라드와 사장님의 눈초리

작가의 작업실에 대하여

"작가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글을 쓰는 시간'이 아니라 '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이기주 작가는 [글의 품격]에서 말했다. 책상 앞에서 벗어났을 때의 아이디어가 더 유용하게 활용될 때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작가의 집필실에 대해 생각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쓰는 공간이 꼭 필요하지만 때로는 정해진 책상이 아닌 의외의 공간이 글에 또 다른 공기를 불어넣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집안의 널따란 식탁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글을 쓴다. 남편과 아이가 잠든 새벽이나,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난 후  식탁에 앉아 글을 쓴다. 컴퓨터와 책상, 책장이 있는 서재가 있음에도 식탁에 앉아 글을 쓰는 이유는 오직 테이블의 넓이 때문이다. 여섯 명이 앉아도 여유로운 원형의 식탁 위에는 노트북과 노트, 간단히 읽을 수필집 한 권, 스마트폰과 안경집,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아무렇게나 올려두어도 답답하지 않기 때문이다. 식탁에 앉아 추억을 떠올리고, 오늘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며 글감을 찾는다. 하지만 몇 달간 집안에서 글쓰기를 하며  방해 요소가 너무나 많다는 걸 알았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도중에 거실에 널려있는 장난감이 보이고(나는 성격상 너저분한 게 보이면 일단 치워야 한다.) 새로운 설거지 거리와 세탁실에 아직 남아있는 빨래가 생각난다. 글을 쓰는 도중 떠오르는 집안일 때문에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 요 며칠 밖으로 나갔다. 책상 앞을 드디어 벗어난 것이다.



집 근처에는 몇 개의 카페가 있다. 나는 밀림의 사자가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것처럼 글쓰기에 알맞은 카페를 찾아 골목을 어슬렁거린다. 며칠을 둘러본  결과  밖에서 보기에 마음에 딱 드는 카페를 몇 군데 발견했다. 그중 하나는 공원 앞에 있는 카페이다. 공원 앞 카페라니 장소가 주는 싱그러움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통유리창 너머로 오래된 공원의 아름드리나무가 단풍 진 잎들을 쏟아질 뜻 날리는 멋진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카페 사장님이 직접 내려주는 드립 커피는 분위기에 향기까지 더한다. 이런 멋진 곳에서는 앉아만 있어도 감성이 몽글몽글 해질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카페에는 치명적인 방해 요소가 있다는 걸 글을 쓰려고 찾아간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바로 음악이다. 90년대와 이천 년 대 초반  우리가 사랑했던 발라드의 피아노 연주곡이 하루 종일 흘러나온다. 나와 엇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사장님의 취향이 분명하다. 멜로디만 들어도 가사 하나 안 틀리고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을 것만 같다. 음악에 관심을 끄고 글을 몇 줄 쓰려고 하면 노래의 클라이 막스 부분의 가사가 노트북 가운데 번쩍 떠오르는 것 같다. "이~~ 젠 눈물을 거~~ 둬~~" 숨을 한번 고르고 다시 글 쓰기에 몰입하려고 하면 또다시 새로운 곡의 가사가 떠오른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결국 공원 앞 카페에서의 글 쓰기는 키를 놓치고 만다. 


또 다른 카페는 공원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다. 역시나 통유리 너머로 소도시의 얼마 남지 않은 전원 풍경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곳에 위치해 있다. 이 카페는 넓은 홀에 테이블 다섯 개가 전부이다. 테이블과 의자가 다닥다닥 붙은 프랜차이즈 카페들과는 완전 반대의 분위기이다. 옆 테이블에서 나누는 대화가 전혀 들리지 않는 너무나 완벽한 인테리어이다. 이런 카페는 오래 앉아 있으면 기다릴 다음 손님이 신경 쓰여 사실 글을 쓰기에 적당하지 않다. 하지만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외진 곳에 위치한 카페라 그런지 손님이 거의 없어 오래 앉아 있어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곳에 마음을 붙이고 노트북을 펼쳤다. 기분이 상쾌해 그런지 첫 문장부터 술술 글이 풀린다. 그런데 글 쓰기를 방해하는 것은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한참 노트북을 두드리던 중 낯선 느낌이 들어 등이 오싹해졌다. 뒤 돌아보다 나를 바라보는 눈과 딱 눈이 마주쳤다. 카페 사장님이 홀 중앙 정확히 내 등 뒤에 서 계셨다. 사장님은 나를 감시하는 건 아니고 손님들이 편안하게 즐기는지 둘러보는 중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눈인사를 하고는 도도하게 걸어 다른 테이블 쪽으로 갔다. 사장님은 등 뒤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카페에 머문 두 시간 내내 창가에서, 피아노 옆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글을 쓸 때에는 무관심이 최대의 도움이다. 시도 때도 없이 느껴지는 사장님의 눈초리에 더 이상 이 카페에 글을 쓰러 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직 글을 쓸 최적의 장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시 돌아온 나의 집 식탁에는 아침에 아이가 먹다 만 간식들이 널려있다. 글 쓰는 장소에 대한 까다로움은 아직 명함도 못 내민 초짜 작가의 고충임이 분명할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게 문을 닫고 식탁에 앉아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완성했고, 유시민은 후배의 작업실 한편에 컴퓨터를 놓고 수많은 책들을 썼다고 했다. 세상에 완벽한 작업실은 없다. 그저 바람 부는 길가에서, 수다가 넘쳐나는 카페의 한편에서 가슴속에 이야기가 넘쳐나길 바란다. 생각만 해도 좋은 작가의 내공을 욕심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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