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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23. 2019

내 기분과 글의 기분



어느 작가가 말했다. 새벽에 쓴 글을 새벽에 발행하지 않는 것이 느끼한 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새벽이라는 미묘한 시간이 주는 감성은 정신이 개운해진 오후에 보면 오글거림 그 자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내 기분이 글의 기분을 망치는 경우이다.


예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인터넷에 떠돌던 그림 하나에 크게 공감한 적이 있었다. 혈액형에 따른 뇌구조에 대한 그림이었다. 나의 혈액형은 B형이다. B형의 뇌구조 속에는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단어가 ‘내 기분’이었다. 내 기분이 내가 하는 행동에 제일 큰 영향을 미친다는  표현에 천 퍼센트 공감했던 적이 있다. 이런 내가 분노 속에 글을 쓴다면 할퀴고, 상처 내는 글이 될 게 뻔하다. 나야말로 행복한 상태에서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아무 동요가 없는 상태에서 글을 써야 글의 기분이 담백해질 수 있는 것이다.


남편과 별것 아닌 일로 다툰 아침이었다. 언쟁을 끝내긴 했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이럴 때는 기분도 꿀꿀하니 이불 뒤집어쓰고 잠이나  자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잠을 자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스트레칭이라도 하면 기분이  나아졌다. 하지만 그건 몸이 개운해진 기운이 기분에까지 미친 것이다. 정작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기분이 안정된 덕분에 차분히 문제에 대한 얘기를   있었다. 오전에는 글을 써야 하니 잠을 자거나 달리기를 하고  시간이 없었다. 이날은 화를 삭이는 것마저 속성으로 해야 했다. 설거지를 하며 마음을  다독인  남편과 대화를 나눴다.


기분이  좋아서  쓰기 힘들  같아.”

그럼 기분 좋아지게 책을  읽어.”

박완서 선생님의 수필을 읽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져. 글을  쓴다는  그런 걸까?”

그분은 글쓰기에선 워낙 대가잖아.”

맞아. 대가가 되어야 여유가 생기는 거겠지?”

그것보다, 그분이 좋은 마음으로 써서 그런  아닐까?”

좋은 마음?”

내가 글을  못쓰니까  쓰는 방법은 모르지만, 좋은 마음을 가져야 좋은 글도   있는  같아.”


남편의 말은 맞는  같았다.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글에서 나쁜 기분을 느낄 확률은 매우 낮았다. 나는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되는대로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그렇담. 화해하자! 나는 오늘 아침에도 글을 써야 하니까 이런 기분으로는 글도 기분 나빠질  같아.”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바람에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웃어버리니 기분이 개운해졌다.   아닌 일은 어이없는 웃음에도 훌훌 털리는 것인데 끌어안고 있었으면 시간낭비일 뻔했다. 그날 아침에는 다시 개운해진 기분으로 글감을 골랐다. 어떤 행복했던 날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떠올릴  있을  같은 아침이었다.


나의 글은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읽힐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한 이후로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면  금세 조회수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읽는 나의 글에서 분노로 가득했던 날의 편협한 생각을 들킬까 봐 두렵다. 슬픔을 쥐어짜느라 전혀 슬프지 않은 글을 보이게 될까 두렵다. 그래서 오늘도 담담하게 써내려 가기 위해 마음을 돌아본다.


행복해서 웃은  아니라 웃다 보니 행복해졌다는 말처럼, 행복해서 쓰는 글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마음을 다독였더니 쓸수록 행복하다. 오늘의 글에도 나의 기분이 담긴다. 오늘은  식구가 늦잠을 실컷 자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특별하지 않지만 따뜻하고 나른해서 기분 좋은 토요일이다. 나의 담담하고 소소한 행복을 담아 글을 발행한다. 나의 글도 기분 좋은 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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