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가가 말했다. 새벽에 쓴 글을 새벽에 발행하지 않는 것이 느끼한 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새벽이라는 미묘한 시간이 주는 감성은 정신이 개운해진 오후에 보면 오글거림 그 자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내 기분이 글의 기분을 망치는 경우이다.
예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인터넷에 떠돌던 그림 하나에 크게 공감한 적이 있었다. 혈액형에 따른 뇌구조에 대한 그림이었다. 나의 혈액형은 B형이다. B형의 뇌구조 속에는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단어가 ‘내 기분’이었다. 내 기분이 내가 하는 행동에 제일 큰 영향을 미친다는 표현에 천 퍼센트 공감했던 적이 있다. 이런 내가 분노 속에 글을 쓴다면 할퀴고, 상처 내는 글이 될 게 뻔하다. 나야말로 행복한 상태에서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아무 동요가 없는 상태에서 글을 써야 글의 기분이 담백해질 수 있는 것이다.
남편과 별것 아닌 일로 다툰 아침이었다. 언쟁을 끝내긴 했지만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이럴 때는 기분도 꿀꿀하니 이불 뒤집어쓰고 잠이나 더 자는 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잠을 자거나 달리기를 하거나 그도 아니면 스트레칭이라도 하면 기분이 좀 나아졌다. 하지만 그건 몸이 개운해진 기운이 기분에까지 미친 것이다. 정작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기분이 안정된 덕분에 차분히 문제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오전에는 글을 써야 하니 잠을 자거나 달리기를 하고 올 시간이 없었다. 이날은 화를 삭이는 것마저 속성으로 해야 했다. 설거지를 하며 마음을 좀 다독인 뒤 남편과 대화를 나눴다.
“기분이 안 좋아서 글 쓰기 힘들 것 같아.”
“그럼 기분 좋아지게 책을 좀 읽어.”
“박완서 선생님의 수필을 읽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져. 글을 잘 쓴다는 건 그런 걸까?”
“그분은 글쓰기에선 워낙 대가잖아.”
“맞아. 대가가 되어야 여유가 생기는 거겠지?”
“그것보다, 그분이 좋은 마음으로 써서 그런 게 아닐까?”
“좋은 마음?”
“내가 글을 잘 못쓰니까 글 쓰는 방법은 모르지만, 좋은 마음을 가져야 좋은 글도 쓸 수 있는 것 같아.”
남편의 말은 맞는 것 같았다.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쓴 글에서 나쁜 기분을 느낄 확률은 매우 낮았다. 나는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되는대로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그렇담. 화해하자! 나는 오늘 아침에도 글을 써야 하니까 이런 기분으로는 글도 기분 나빠질 것 같아.”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바람에 나도 같이 웃어버렸다. 웃어버리니 기분이 개운해졌다. 별 것 아닌 일은 어이없는 웃음에도 훌훌 털리는 것인데 끌어안고 있었으면 시간낭비일 뻔했다. 그날 아침에는 다시 개운해진 기분으로 글감을 골랐다. 어떤 행복했던 날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아침이었다.
나의 글은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읽힐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한 이후로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나면 금세 조회수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읽는 나의 글에서 분노로 가득했던 날의 편협한 생각을 들킬까 봐 두렵다. 슬픔을 쥐어짜느라 전혀 슬프지 않은 글을 보이게 될까 두렵다. 그래서 오늘도 담담하게 써내려 가기 위해 마음을 돌아본다.
행복해서 웃은 게 아니라 웃다 보니 행복해졌다는 말처럼, 행복해서 쓰는 글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마음을 다독였더니 쓸수록 행복하다. 오늘의 글에도 나의 기분이 담긴다. 오늘은 세 식구가 늦잠을 실컷 자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 특별하지 않지만 따뜻하고 나른해서 기분 좋은 토요일이다. 나의 담담하고 소소한 행복을 담아 글을 발행한다. 나의 글도 기분 좋은 날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