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비 Nov 24. 2019

성실한 근육맨




조용히 앉아 글을 쓸 카페를 드디어 발견했다. 집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 떨어진 주택가의 한 모퉁이에 있는 카페다. 근처까지 몇 번을 가봤지만 빵집인 줄 알고 선뜻 들어가 보지 않은 곳인데 어느 날 빵이나 사갈까 싶어 들어가 보니 글 쓰기 조건에도 딱 맞는 곳이었다. 조용한 팝이 흐르고 테이블 간격이 너무 좁지 않으면서 카운터와 꺾인 곳에 테이블이 위치해 사장님과 눈이 마주칠 일도 없는 곳이다. 더군다나 글을 쓰는 내내 고소한 빵 냄새가 풍겨온다. 아로마테라피를 받으면서 글을 쓰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글 쓰기 장소는 이곳으로 정하고 오전 시간 글을 쓸 때 두세 시간 머문다.


카페는 원래 빵가게이다. 빵을 팔며 커피도 함께 팔고 있는데 나는 글을 쓰며 마시는 커피 맛보다 빵맛에 카페에 가는 시간이 기다려지곤 한다. 이 빵집에는 치아바타를 판다. 네 종류의 치아바타와 페스츄리, 크로와상, 마들렌이 전부이다. 넓은 빵가게 답지 않게 진열장 하나에 몇 가지 빵이 진열된 것이 전부이다. 카운터 옆에 있는 제빵실에는 팔리기를 기다리는 같은 종류의 빵들이 틀 위에 가지런히 얹혀있다. 카페에 간 첫날 빵을 한 봉투 사서 나오며 이 집이 과연 망하지 않고 몇 달을 버틸 수 있을까 생각했다. 빵 몇 가지로 이 넓은 건물 월세라도 낼 수 있을까? 아니면 사장님이 건물주일까?  모퉁이를 돌아 나오면 대로변에 있는 프랜차이즈 빵집들은 종류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빵들을 판다. 가게 규모도 넓지 않아서 누가 봐도 우리 동네의 알짜배기 가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빵집들 사이에 몇 가지 빵으로 승부를 거는 나의 빵집(내가 애정 한다는 의미입니다.)은 초라해 보이기보다 너무나 당당하고 멋지기까지 하다. 게다가 빵 맛은 이태원 어느 골목의 유명한 빵집과 견주어도 오히려 이길 수 있을 만큼 담백하고 고소하다.


글을 쓰고 나오며 빵 몇 개를 사서 계산을 하려던 참이었다. 카운터 옆의 제빵실에 누가 봐도 우리의 제빵사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열심히 빵을 만들고 있었다. 며칠 카페에 들락거린 눈치로 카운터에 서 있는 사장님과 부부인 듯했다. 제빵사는 반팔 티셔츠에 앞치마를 입고 조리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팔에 알통이 올록볼록한 근육맨이었다. 빵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운동선수라고 해도 믿을만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제빵사일 수도 있지만 빵 반죽을 운동처럼 매일 하다 보니 근육이 붙었을 수도 있다. 집에서 어쩌다 수제비 반죽이라도 하려면 팔이 빠질 듯이 반죽을 치댔는데 저 많은 빵을 날마다 만드는 팔은 보통의 힘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매일 빵 반죽을 하다 보니 근육이 붙은 성실한 제빵사가 만든 빵 맛은 그날부터 더 믿음이 갔다.


빵을 사들고 나오며 내 곁의 수많은 성실한 근육맨 대해 생각했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사람에게는 움직이는 부분에 근육이 생긴다. 그 일이 즐거운 일이라면 우리의 제빵사처럼 운동을 한 듯 멋진 근육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평생을 가족이 돈 걱정 안 하고 사는 것을 꿈꾸며 바다와 싸운 나의 아버지도 근육맨이다. 육십 대에도 우람한 팔로 여전히 손주들의 그네가 되어준다.  늘 식구들 다독이며 마음으로 애쓰는 우리의 엄마도 근육맨이다. 마음에 단단한 근육이 있지 않고서야 궂은일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자식들에 용기를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도 근육맨이 되는 날을 꿈 꾸었다. 성실하게 필라테스를 하며, 매일 같이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며 몸과 정신의 근육을 기르고 싶었다. 근육맨이 되어 담백하고 고소한 글을 쓰는 날을 꿈 꾸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기분과 글의 기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