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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26. 2019

글감 사냥꾼




매일 이야기를 모으는 여자가 있다. 여자의 하루는 자던 자리 떨어진 이야기가 있나 둘러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야기는 천지사방에 널려있어서 여자가 주우려고만 마음먹으면 들고 다니는 에코백 한가득 이야기를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여자는 아무 이야기나 줍지 않는다. 모래사장 곳곳에 반짝이는 조개껍데기가 널려있어도 무늬가 화려하고 신비스러운 조개만 마음에 드는 것처럼. 멀리서 보면 반짝였어도 가까이 가서 보면 그저 햇빛에 반사된 한 귀퉁이의 빛일 뿐 어디에나 널린 조개껍데기는 여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 못했다. 여자는 조개를 줍는 소녀같이 이야기들을 들여다보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책장의 책을 들춰보는 것이었다. 책은 또 다른 이야기 수집가가 모아서 자기 방식대로 배열해 놓은 컬렉션 같았다. 컬렉션을 들여다보는 것은 너무나 설레는 일이었다. 여자는 누군가가 먼저 발견한 엄청난 이야기를 보며 질투하고 감탄했다. 자신보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빨랐던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빼앗긴 것만 같아 더 빨리 달려야지 마음먹기도 했다. 몇 시간 동안 책에서 발견한 반짝이는 이야기들에 몇 개의 밑줄을 그어놓고서야 부러운 마음을 접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제는 드디어 행동을 개시해야 할 시간이었다. 여자는 집 앞 또래의 여자들이 가득한 오전 아홉 시 삼십 분의 카페로 간다. 사람들은 시간에 따라 공간을 나누어 사용했다. 주말 오후에는 연인들을 위한 밀담의 장소였던 카페는 평일 오전 또래 여자들의 불행 배틀을 위한 경연장으로 바뀌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장르를 바꾸는 카페에 앉아 있으면 수도 없는 이야기가 쏟아져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들여다보기만 할 뿐 쏟아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아무것도 담아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빛났어도 손에 잡히지 않으면 마음을 접었다.


길을 걸으며, 마트에서 장을 보며, 된장찌개를 끓이고, 오랜만에 하이힐을 신으며 여자는 어디에 이야기가 있는지 뒤졌다. 이 때는 흡사 깊은 숲 속에서 보물 찾기를 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발견한 하얗고 뾰족하게 접힌 종이의 귀퉁이를 열면 ‘꽝! 다음 기회에’라고 쓰여 있었다. 꽝 종이를 확인하고 나면 카펫이 깔린 것 같던 길을, 카트를 밀고 가던 통로를, 도마에 썰던 채소를 있는 대로 속도를 내어 지났다. 포기가 빨라야 다음 이야기를 찾아 떠날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여자는 아들의 자전거 바구니에서 돌멩이 몇 개를 발견했다.  전날 오후 놀이터에서 놀던 아들이 담아 둔 돌멩이였다. 여자는 아들에게 물었다.


“이 돌멩이는 뭐야?”

“친구”

“돌멩이잖아, 우리 놀이터에 가서 버리고 오자”

“아니야, 친구야.”

“그럼 한 개만 버리고 오자”

“안돼~ 짹짹 까까야~”

“이게 뭐가 과자야~ 이건 돌멩이야”

“아니야 응가야~~ 꽃게야~~~~ 새우야~~~~ 멍멍이야”


아들의 돌멩이는 먹을 것도 되었다가, 보물도 되었고, 똥도 되었다. 여자는 그저 어이없고 신기했다. 그날 오후의 놀이터에서도 아들은 돌멩이를 주었다. 신이 나서 바닥에 널린 돌멩이를 보고 달려가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찾았다’를 외쳤다. 깡충깡충 뛰기도 했다. 자신의 자전거 바구니에 한 움큼 주운 돌멩이를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여자는 오랜만에 놀라운 수집가를 발견했다는 부러움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아들에게 물으면 오늘 주운 돌멩이는 또 다른 이름이 되어 있었다.


여자는 잠자리에 누워  그날 주운 이야기를 떠올려보았다. 반짝이는 것을 찾으려고 애쓸수록, 행운의 쪽지를 찾으려고 발버둥 칠 수록 담기는 것 없었던 자신의 헐렁한 가방을 떠올렸다. 내일은 빛나고 놀라운 이야기 대신 놀라운 수집가와 돌멩이나 더 줍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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