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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Nov 27. 2019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엄마 품에 안겨 율이가 운다. 요즘 율이는 매일같이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 울었다. 어느 날은 아빠 빠방이 타고 싶고, 어떤 날은 아파트 단지 밖에 있는 놀이터에 가고 싶고, 또 어떤 날은 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 세 살 꼬마가 표현할 수 있는 온갖 좋아하는 일들이 이유가 되어 울음소리에 섞인다. 우는 아이를 선생님 품에 안기고 돌아서며 ‘율아 힘내. 울지 않기. 사랑해’ 외친다. 우는 아이를 외면하려니 내가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아 괴롭다.


어려서부터 기독교 신자라 틈나면 기도를 한다. 눈을 감지 않고, 두 손을 모으지 않아도 길을 걸으며, 식탁 앞에 앉으며 습관처럼 하나님을 찾는다. 내 기도의 대부분은 나의 결핍을 채워달라는 것이다. 불안을 잠재워달라는 것이다. 열한 살 때 처음 신앙이 생기고 제일 좋았던 것은 무서운 화장실에서 누군가 나를 두려움으로부터 지키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살 던 회색 슬레이트 지붕 집은 화장실이 집 밖에 있어서 밤이 되면 깜깜하고, 파도 소리가 삼킬 듯 거세고, 바람에 문이 덜거덕 거리기도 했다. 아이의 상상력까지 발휘되어 공포에 휩싸여 화장실에 가야만 했다. 어디선가 태권브이처럼 나를 지키는 용맹 무쌍한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은 열한 살 아이가 경험한 신앙의 실체였다. 그 때문인지 나의 기도에는 언제나 나를 지킬 것을 당부하는 간절함이 빼곡하다. 행복, 건강, 풍요가 빠지지 않는 단어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무엇이 행복인가? 오늘 아침 햇살에 잠 깬 율이가 뒹구르르 굴러와 엄마의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들었을 때, 미끄럼틀을 빙글빙글 돌아 내려오며 ‘짜잔~ 엄마가 제일 좋아’라고 말할 때, 씻기고 배를 간질이면 까르르 웃을 때, 말도 안 되게 많은 순간 나는 행복하다. 하루를 살 행복을 지어 율이는 엄마를 먹였다. 행복을 달라고 기도하기 전에 불행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했다.


행복하면서도 그걸 모르는 사람, 건강하면서도 의심하는 사람, 부족함 없으면서도 넘치고 싶은 사람은 적어도 되지 말아야 했다. 행복 앞에서 단순하고 소박해져야 아이의 울음에도 단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만난 지 이년 밖에 안된 아이가 만드는 행복을 내 눈으로 목격하며 믿어주어야 했다.


네가 너를 지킬 수 있어.


그 어떤 의심 섞이지 않은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으로 내일은 아이를 응원할 것이다. 그것만큼 단단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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