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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02. 2019

떡볶이 아줌마의 고추장에게 박수를

내가 애증 하는 TV 프로그램 중 하나는 '백종원의 골목식당'이다. 극적 연출을 위한 섭외인지 하나같이 속 터지는 식당 사장님들을 보면 '왜 저런 사람들이 로또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성공해야 하나' 싶다가도 백 대표님의 울분과 노하우와 격려로 성장해가는 그들을 보면 '그래 누구에게나 죽으란 법은 없어'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최근 방송 중인 식당들 중 떡볶이집 사장님은 또다시 나의 울분을 들끓게 한다. 맛없는 떡볶이를 자신감 넘치게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 대표님은 이건 그 어떤 콘셉트에도 속하지 않는 희한한 떡볶이 맛이라고 했다.  안 먹어 봐도 뻔하다. 정말 맛없는 떡볶이였을 것이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라면 1초도 걸리지 않고 떡볶이라고 외치는 나에게 이런 상황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추장이 문제였다. 아줌마가 14년간 직접 담갔다는 고추장은 맛이 없었다. 고추장이 맛없었기에 떡볶이도 두말할 필요 없이 맛이 없었겠지. 아줌마는 품질 좋은 고춧가루로 매년 정성스럽게 새로운 고추장을 만들어 여태껏 장사를 이어왔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될 리 없었기에 TV 프로에도 나왔으리라. 백 대표의 제안에 자신의 고추장을 포기하고 시판 고추장과 간장으로 떡볶이를 만들기로 했다.


시판 고추장으로 떡볶이를 판매한 첫날 떡볶이 한 판이 금세 다 팔렸다. 누군가는 일 인분을 추가하기도 했다. 떡볶이 한판을 다 팔고 아줌마는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자신의 소원이 하루에 떡볶이 한 판을 다 팔아보는 것이랬다. 두 판을 파는 것은 꿈같은 일이라고 했다. 소원을 이뤘는데도 기뻐하지 않는 이유는 고추장 때문이랬다.


사람들의 입맛은 지난날 정성을 다해 만든 고추장보다 마트에서 산 고추장을 좋아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것에 있어 옳은 것을 굳이 꼽으라면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맛이 옳다. 하지만 아줌마의 맛없는 비법 고추장에 마음이 닿았다. 꿈을 가진 사람의 노력 같은 것이 슬프게도 비쳤기 때문이다. 14년이 걸려 올라보니 이 산이 아니었던 것이다. 4개월도 아닌 14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길었다. 그 노력으로 성공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아줌마의 고추장이 마음에 걸린 이유는 글을 쓰는 오늘 나도 고추장을 담그는 심정이기 때문이다. 좋은 글감을 골라다가 정성스럽게 쓰고 거기에 나만의 빛깔과 맛까지 내고 싶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맛이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대단한 메뉴도 없고, 솜씨가 없어도 정성 들인 분식 같은 글을 써놓고 딱 백 명만 읽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글을 써놓고 고치고, 발행해놓고 수시로 다시 읽어보는 것도 떡볶이 냄비를 젓는 마음과 같으리라.


꿈꾸는 사람에게 자신만의 비법 고추장이 없다는 사실만큼 헛헛한 것이 있을까? 그래서 14년 동안 아줌마의 꿈을 지켜준 고추장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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