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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03. 2019

내 아들의 엄마 숀조아씨

살다 보면 나 혼자만의 기념일이 생기곤 한다. 2019년 11월 29일은 내게 그런 날이다. 무슨 기념일이냐면 누군가가 내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준 날이다. 그 누군가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남자인 아들 율이다.


율이를 재우려고 누워 여느 날과 다름없이 쫑알쫑알 수다와 동요 메들리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이제 제법 말이 는 율이는 내가 하는 짧은 문장들을 곧잘 따라 하곤 했다. ‘어휴 참, 너 왜 이렇게 엄마 말 안 듣니?’라고 하면 ‘어휴~ 참’을 따라 하는 꼬마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나는 말도 안 되는 투정들을 이어갔다.


나: 어휴 참 너 누굴 닮아서 이렇게 깜찍하니?

율: 어휴~참 찍찍하니?


나: 어휴~참 너 뭘 먹어서 배가 이렇게 볼록하니?

율: 어휴~참 똘로카니?


장난을 이어가던 중 갑자기 율이가 내 이름도 발음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 율아 엄마 이름 뭐야?

율: 엄마!

나:아니~ 엄마 이름은 엄마가 아니야.

율: 엄마!

나: 그럼 네 이름은 뭐야?

율: 율이

나: 옳지 옳지!! 그럼 엄마 이름은 뭐야?

율: 엄마 이름? (골똘히 생각한다)

나: 응 네 이름은 율이, 엄마 이름은 뭘까?

율: 엄마 이름  숀조아!

나: 아하하하하하 응 엄마 이름 숀조아야 하하하하


그렇게 난생처음 주입식 교육으로 내 이름을 가르쳤다. 아직 어눌한 아이의 발음으로 새어 나오는 나의 이름 숀조아에 너무나 행복한 밤이었다. 율이가 엄마를 언제 처음 말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음머, 멈머, 어머, 엄마와 비슷한 수도 없는 발음들 사이에 어느 날인가 또렷하게 엄마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엄마의 존재를 또렷이 발음한 것도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받침도 많고 발음도 어려운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김춘수 시인은 일찍이 우리에게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의미인지 얘기했다. 그 훌륭한 일을 태어난 지 이십칠 개월 된 내 아들이 해냈다. 무엇보다 엄마는 숀조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식을 할 것만 같았다. 2년간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오며 너무나 많은 내 것을 포기하고 접어 두었었다. 그 지루하고도 빽빽했던 시간들이 이렇게나 달콤한 단어로 보상받는 것만 같았다.


그날 밤에는 앞으로 율이에게 알려줄 엄마의 어떤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 엄마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은 라푼젤,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 엄마의 고향은 통영..... 별 헤는 밤처럼 엄마의 추억과 취향과 꿈에 대해 수도 없이 생각했다. 내 아들이 그것들의 의미를 알게 되는 날이 오면 하나씩 알려줄 것이다. 이런 멋진 계획을 세우고 나니 아이를 키우는 일이 더 이상 외롭고 긴 경주가 아니었다. 얼마나 멋지고 보석 같은 날들이 다가올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아이는 우주를 품었다는 말이 실감되는 밤이었다. 그 우주에서 숀조아씨는 율이의 좋은 벗이 되고 싶었다.


율이가 엄마에게 처음 만들어준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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