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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05. 2019

키보드 앞에서는 몸을 낮추는 게 좋다

나의 글쓰기에는  몇 가지 단서가 붙는다. 첫째 글을 쓰는 내 기분이 평화로워야 할 것. 둘째 쓰는 동안 내가 재미있어야 할 것. 셋째 글을 쓴 후 내 마음이 이전보다 좋아져야 할 것. 어쩌면 모두가 기분에 대한 얘기이다. 글을 통해 내 마음의 정화를 맛보고 싶은 욕구 때문인듯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우울했던 일상이, 막막했던 내일이, 그 모든 걸 심란한 눈으로 바라보는 내가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경험했다.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면 가능한 일이었다.

어제의 글을 발행해 놓고 조마조마했다. 친구와 행복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글을 썼다. 여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혼란스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글이었다. 내가 경험한 상황으로부터 평화로워지지 않았으니 쓰지 말았어야 할 글이기도 했다. 쓰고 나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으리라.

저녁을 먹고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아이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만일 내 친구가 나의 글을 읽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느라 친구의 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한 글을 써버리고 말았다. 밤늦게까지 고민하다 결국 발행 취소 버튼을 눌렀다. 매일 한 편의 글을 발행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처음 완벽한 발행을 하지 못한 날이 되었다.

작가가 되어 책을 발행하고 나면 친구의 절반이 떨어져 나간다는 씁쓸한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일상이 내 글에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SNS 조차 하지 않는 나의 부모님은 그의 과거와 추억이 나를 통해 가공되고 세상에 알려진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일 수도 있다. 나의 세계에 들어와 살고 있는 수많은 나의 지인들은 언젠가 내 글에 등장할 것이다. 가까이는 남편과 아이, 부모님, 나의 형제들, 그리고 친구, 오며 가며 마주쳤던 거리의 사람들. 나의 세계를 만들어주는 소중한 존재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훗날 내가 에세이집을 발행한다면 부디 상처 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랐다.

내 마음을 돌보려고 누군가를 상처 주는 것만큼 이기적인 일도 없다. 살얼음 밟는 순간처럼 조심스럽게 키보드를 눌러야겠다고 생각했다. 키보드 앞에서는 몸을 낮추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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