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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06. 2019

설거지를 부탁해



남편이 설거지를 한다. 세 식구 저녁 먹은 설거지를 싱크대에 쌓아놓고 밍그적거리고 있으면 어느새 남편이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고 있다. 하루에 세끼를 먹고 세 번의 설거지를 하는 일은 보통의 부지런함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아침 설거지를 하고 나면 점심때가 오고, 점심 설거지를 하고 나면 꼬리 물듯이 저녁 장을 보러 갈 시간이 된다. 먹고 치우는  길고 지난한 과정을 세 번 거치면 하루가 저문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잠깐 취식 과정의 틈에 해치운다. 아침 먹고 설거지하고, 점심 먹고 설거지하고, 그 사이 글을 쓰고, 운동도 하고, 아이를 돌보고, 저녁까지 먹고 나면 설거지할 기운이 없다. 누구 들으란 소리는 아니지만 ‘10분만 쉬고 설거지해야지’라고 외치는 건 왠지 설거지를 미뤄도 되는 정당성을 얻는 것만 같다. 친정 엄마가 들으면 얼른 일어나 치워 놓고 쉬라고 등짝 스매싱을 날릴 일이다. 늘 한 방울 물기 없이 깔끔한 엄마의 싱크대를 떠올리면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되지만 요리보다 설거지가 힘든 것은 취향의 차이라고 생각을 에둘러 본다.


정리와 청소가 몸에 밴 남편을 만난 건 그런 의미에서 무척 다행이다. 남편은 내가 게으름 피울 수 있는 틈을 허락해주는 사람이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느라 어질러 놓은 주방을 보고 한숨 한번 쉬며 거실로 돌아와 소파가 푹 꺼지도록 몸을 던지면 남편이 행동개시를 한다. 세 식구 먹은 음식 담은 밥그릇, 국그릇, 접시를 닦고, 수저와 냄비들도 닦는다. 마음먹고 설거지하는 날에는 가스레인지도 닦고, 행주까지 빨아 수전에 각 잡아 말려 둔다.


“남편 고마워~~”

“응, 그런데 우리 뭐 잔치했어? 그릇이 좀 많네”

“잔치했잖아~ 저녁을 얼마나 거하게 먹었냐?”

“그릇 좀 줄여~”


잔소리 한마디를 들어도 산더미 같던 그릇이 반짝이는 물기를 묻히고 건조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면 기분이 개운하다. 남편이 설거지하는 동안 율이랑 한 바탕 신나게 놀고 주방을 어슬렁거리는 건 내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보물 찾기를 하고 남은 쪽지를 나무 틈에서 발견하는 것처럼 남은 그릇을 찾는 건 내 몫이기 때문이다. 압력밥솥에서 꺼내지 않은 내솥이나, 율이의 가방에 담긴 도시락과 물병을 찾아 나머지 설거지는 내가 한다. 싱크대에 남은 음식물도 싹싹 모와 수거함에 담는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의 장점을 살린 설거지 팀인 것도 같다. 남편은 정리를 잘 하지만 디테일에 약하고, 나는 숨어있는 그릇들도 볼 수 있을 만큼 주방 사정에 빠삭하다. 이런 우리가 설거지를 함께 하면 빈틈없이 청결한 집을 유지할 수 있다. 남편의 마지막 잔소리와 나의 한숨만 빼면 환상의 팀워크를 발휘하는 설거지 이인조가 될 수 있다.


어쩌다가 저녁 설거지를 도와주지 않는 날이면 집안 공기를 썰렁하게 만들 만큼 한숨 푹푹 쉬며 설거지했던 나를 돌아본다. 그 순간 속이 부글거렸던 나는 몰랐다. 차라리 그 순간 게으름을 피우는 게 우리가 명랑 시트콤처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임을. 가끔 게으름 피우는 아내와 정리 좋아하는 남편이 화목의 울타리를 칠 수 있는 방법임을. 저녁 설거지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의 통찰을 얻는다. 역시 남편이 설거지를 함께 하는 건 아름답고 생산적인 일이다.




김영민 교수가 쓴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을 읽으며 설거지를 통해 역사와 인생을 바라보는 그의 통찰력에 무릎을 쳤지만 속이 부글거렸던 어느 날을 위로받아 그 대목을 남겨본다.


취식은 공동의 프로젝트입니다. 배우자가 요리를 만들었는데, 설거지는 하지 않고 엎드려서 팔만대장경을 필사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귀여운 미남도 그런 일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혹자의 삶이 지나치게 고생스럽다면, 누군가 설거지를 안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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