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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08. 2019

그림자와 크리스마스트리


잠자던 아이가 소스라쳐 우는 소리에 놀라 아이 방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어둠 속에서 엄마를 발견하자마자 달려와 품에 안긴다. 어디가 아픈가 이마를 짚어보니 다행히 열은 없다. 나쁜 꿈을 꾸었나 보다. 이제 조각 케이크만큼 세상을 경험한 아이에겐 어떤 것이 두려운 존재일까. 궁금해져 물었다.


“율아, 꿈꿨어?”

“응”

“꿈속에 사자가 나타났어?”

“응. 사자아아아아아”

“엄마가 안보였어?”

“응. 엄마아아아아아”

“괜찮아. 꿈은 진짜가 아니야”

“아니야아아아아아아”


꿈은 아니었나 보다. 아이의 입장에서 무서웠을 것들을 늘어놓아보았지만 내 물음의 반복일 뿐 아이는 아직 정확히 두려운 것의 존재를 표현하지 못했다. 쉽사리 그치지 않고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안아 올리는 순간 아이가 눈을 질끔 감았다. 무엇을 본 것이다. 어둠 속에서 뭘 봤을까 나까지 덜컥 겁이 났다. 아이의 시선이 머물렀을 천장을 올려다봤다. 천장에는 달빛을 받은 블라인드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아이의 눈에는 이빨이 많고 흐느적거리는 거대 괴물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율아, 그림자가 무서워?”

“무서워. 싫어~~~”

 

두려움의 범인이 밝혀졌다. 그림자는 무서운 게 아니라고 토닥거리며 말해 주었지만 아이의 울음은 쉬이 그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아빠가 해주시던 것처럼 손으로 토끼도  만들고 나비도 만들어 그림자놀이를 해주었지만 소용없었다. 그림자의 모양이 바뀔 때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깜깜한 밤의 골목길, 어두운 그림자, 먹어보지 못한 맛, 가보지 않은 세계, 어딘가에서 튀어나올지 모를 고속도로 귀신까지. 나에게도 공포, 넓게는 두려운 것들은 막연하고도 많았다. 막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란 타고난 기질이 없는 한 쉽지 않은 일이다. 겁이 많은 내게 두려움을 순순히 뛰어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기억을 거슬러 보니 그 미지의 세계를 어떻게든 만나보고서야 넘어설 수 있었다. 깜깜한 밤의 골목길에서 맞았던 첫눈이나, 멀리 나를 데리러 총총 걸어오던 엄마의 그림자를 발견했던 순간, 생전 처음 먹어본 남미 어느 도시의 눈물겨운 집밥. 두려웠던 내 마음을 환하게 비춰주었던 그 순간의 추억이 덧입혀졌을 때야 비로소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림자가 환해지는 어느 날이 너에게도 왔으면 좋겠다.”


속삭이며 아이를 다독여 재웠다.


12월이 되니 집집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한 곳이 눈에 띄었다. 늦은 밤 컵을 씻느라 서 있던 주방 창 너머로 건너편 집의 트리가 반짝인다. 커튼 넘어 비치는 전구의 깜박임이 은은하고도 예뻤다. 순간 마음 한 구석에 있던 걱정의 방에 반짝 불이 켜졌다. 율이를 불러와 안아 올렸다.


“율아, 저기 반짝반짝하는 거 보여?”

“야~~ 반짝 반짝이다~~~~”

“예뻐?”

“응.”

“저거, 그림자야~ 트리 그림자”

“그림자?”

“응,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거리는 그림자야”


아이는 한동안 전구의 불빛이 새어 나와 반짝이는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엄마 품에 안겨서 트리의 불빛을 바라보던 세 살의 기억이 남을까 싶었지만 오래오래 같이 보았다. 아이가 자라는 시간은 모든 것이 처음이라 반짝인다. 나이 마흔을 먹고도 마음에 환한 불빛들을 켤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건 순전히 내 아이 덕이었다.


늘 겁이 많아서 야자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을 무서워했던 나를 위해 마중 나오던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보다 먼저 보이던 엄마 그림자 덕에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 엄마가 켜준 환한 기억처럼 그림자를 무서워하는 율이에게 좋은 기억이 덧입혀지기를 바랐다. 미지의 세계가 언제나 두려운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12월 내내 겨울밤 속에서, 누군가의 두려움 속에서, 추워지려는 마음속에서 반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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