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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11. 2019

기적보다 대단한 일

기적보다 대단한 일을 보았다. 올해 수능 만점자 송영준군의 인터뷰가 TV를 통해 방송되고 있었다. 고등학교 첫 시험에서 꼴찌였던 아이가 사교육 없이 스스로 공부해 수능 만점을 이뤘다는 믿기지 않는 얘기였다. 요즘 수능 문제 수준을 모르긴 해도 스스로 공부해서 만점을 받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닌가.


어머님이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니?


묻고 싶었다. 가정 형편이 어떻데도, 내 처지가 어떻데도, 친구들이 공부를 얼마나 잘한데도 흔들림 없이 마이웨이를 갈 수 있는 심지는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아이를 보니 내 동생도 아닌데 막 뿌듯해서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었다.


정말 멋진 아이다. 심지가 보통이 아닌 걸 보니 씨앗부터 다르네.



TV를 보며 먹고 있던 사과가 맘에 걸린 건 씨앗이라는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님이 올해 농사지어 나눠주신 사과와 엊그제 시장에서 사 온 사과가 냉장고 채소 칸에 가득했다. 시어머님 사과는 두어 달 전에 받아온 것인데 싱겁고 맛이 없었다. 어떻게든 다 먹으려 해도 손이 가질 않아 시장에서 새콤하고 단 사과를 사다 먹던 중이었다.


분명 작년에 어머님 댁에서 따온 사과는 달고 맛이 좋았다. 초보 농사꾼의 실력답지 않은 사과 맛에 세 식구가 아침마다 감탄하며 깎아 먹었었다. 올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맛이 없어도 그렇게 없는 사과에 손이 가질 않는다. 냉장고에서 한참을 버티다가 얼마 안가 버려질 판이다. 맛 좋은 시장 사과에 치이고, 계절이 바뀌어 새로 나온 품종에 치여 신세가 처량 맞아졌다.


송영준군의 인터뷰를 보며 사과를 떠올린 건 내년에는 다시 달고 맛있는 사과를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씨앗부터 다르데도 어느 해에는 싱거워 못 먹을 지경이다. 또 어느 해엔 한알씩 줄어드는 사과가 아쉬울 만큼 맛있기도 했다.


올해는 웬일로 맛없는 애물단지가 내년에는 또 귀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가을 태풍이 불어도, 장마가 길어도, 벌레들이 괴롭혀도 씨앗부터 다른 사과는 내년에 기필코 달고 새콤한 맛을 뽐낼 것만 같았다. 우리의 사과는 심지가 보통이 아닐 것이다.


3년을 어제의 나와 겨루어 스스로 성장해나간 영준 군처럼 묵묵히 시간을 견딜 사과나무를 홀대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태어날 때부터 맛없는 사과라고 낙인 찍힌 씨앗은 없다. 다만 기필코 달콤하고 새콤해지리라 애쓴 사과나무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가을날 맛있는 사과를 먹는다는 건 기적보다 대단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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