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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10. 2019

아무도 모르는 시간

마흔 살이 되면 내 분야에서 누구나 알만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광고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었던 내가 꿈꾼 마흔 살의 나는 TV 프로그램 사이 감칠맛 나는 광고를 만드는 디렉터가 되는 것이었다. 광고 만들기는 서른 살에 마침표를 찍었고, 이직한 회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했지만 직장 생활은 서른일곱에 마무리했다.


마흔 살이 되기까지 육아를 하며 그나마 희미하게라도 존재하던 나의 이름이 사라져 가는 경험을 했다.


마흔 살이 된 나는 유명하지 않다. 다시 말하면 내가 알려지고 싶은 분야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 나를 알릴만한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직 활동을 할 수 있을만한 역량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다.


내년 1월이 되면 세울 계획을 미리 세웠다. 2020년에는 작가로서 나를 드러낼 것. 두 번째는 필라테스 선생님이 될 것이다. 내가 유명해지고 싶은 두 분야이다. 미리 계획을 세워놓고 1월이 되기도 전에 설레발을 치는 것은 추진력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혼자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것보다 육십네 명의 내 소중한 구독자분들께 설레발이라도 쳐 놓으면 조금의 책임감이 더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부디 3월도 되기 전에 포기하지 않도록 채찍질해주세요 ^^)


즐겁자고 시작한 일로 일을 치게 생겼다. 육아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필라테스, 내 마음을 다독이느라 쓰기 시작한 글이 어느새 이만큼이나 나를 끌어당겼다. 내일을 믿을 수 없지만 필라테스와 글 쓰기는 오늘의 나를 드러누워있게 만들지 않고 어떻게든 일으켜 세운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말이 맞다. 마흔 살에 스무 살 같은 다짐을 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않았다.


"이제 시작해서 괜찮겠어?"

"선생님도 너보다는 어리잖아"


왜인지 이런 질문에도 초조하지가 않다.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 아니라 출발선이 있다는 게 막막한 것보다는 고마운 일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마흔 살에 마음먹어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오늘의 유명하지 않은 나는 아무도 모르는 시간을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추위를 뚫고 필라테스를 배우러 가고, 집으로 돌아와 차분히 글을 쓴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평정을 찾는 매일이 반복된다. 겨우내 땅 속에서 봄을 준비하는 씨앗처럼 한껏 웅크리고 성실하게 살아 있다.


매일 아무도 모르는 시간과 싸우고 있는 이즈음 발레리나 강수진의 인터뷰에서 들었던 유명한 말을 떠올린다.

 

하루를 쉬면 내가 알고, 이틀을 쉬면 선생님이 알고, 사흘을 쉬면 관객이 알아요.


언젠가 관객이 나의 성실을 알게 되는 날이 올까.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 다짐한 마음을 쓴다. 아무도 모르는 오늘의 시간을 언젠가 누군가 알게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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