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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12. 2019

이기적인 안도

내 아이와의 시간을 잃지 않기 위하여

마트에서 저녁 장을 보고 걸어오는 길에 아이의 친구를 만났다. 진우. 집 앞 놀이터에 엄마랑 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반가워 달려갔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놀이터에 오래 못 나갔더니 아이의 동네 친구들을 만나 같이 노는 일도 드물어졌다. 그 탓에 제대로 겨울이 오기도 전에 얼른 봄이 오라고 조급증을 낸다.

진우 엄마도 오랜만에 만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우리는 서로 얘기하고 싶었던 제일 놀라운 소식들부터 급하게 꺼낸다. 아이의 어린이집 적응기, 선생님 이야기, 병치레 이야기 결국은 아이들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엄마들이 한참 수다를 이어가는 사이 진우는 신나게 타던 그네에 실증을 느끼고 미끄럼틀을 향해 뛰어간다. 우리는 천천히 진우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학부모 참여 수업 이야기를 이어가며 미끄럼틀 앞에 도착했다.  진우가 보이질 않았다. 미끄럼틀 위에도, 구불구불한 플라스틱 통로 안에도 어디에도 없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져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진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놀란 진우 엄마 얼굴이 싸늘해졌다.

“진우야~~~~, 우리 진우 봤어요?”

근처에 서 있던 다른 엄마들에게 물었지만 진우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분명 우리의 시야 안에 있던 아이가 순식간에 사라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놀이터를 벗어났을 것이라 생각해 우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며 진우를 불렀다.

“진우 찾았어요!”

큰길로 뛰어가던 진우 엄마가 반대편 인도에서 걸어오는 진우를 발견하고는 내게 소리쳤다. 호기심에 놀이터 밖에 있는 건물들을 구경하던 진우는 엄마를 보고 웃으며 달려오는 중이었다.

오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지만 하늘이 새하얘지는 경험이었다. 우리 율이었더라면 하고 생각하니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이다.

집으로 돌아와  장 바구니에서 저녁거리를  꺼냈다. 주스 상자 한 귀퉁이에 아이들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주세요.’ 문구 아래 뺨이 발그레한 남자 아이와 똘망한 눈의 여자 아이 사진이 희미하다. 율이 또래의 아이들이다. 사진 아래 깨알같이 쓰인 글씨를 읽어보니 벌써 20년 정도 지난 일이었다. 이 아이들은 세상 어디에선가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아이는 부모와의 시간을, 부모는 아이와의 시간을 잃어버린 채 속수무책의 그리움 속에 살았을 것이다. 애타는 사연이 쓰여있지 않더라도 먹먹한 일이다.

내 아이는 옆에 있어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안도를 한다. 오늘도 장난감 자동차와 헬리콥터에 빠져 침 흘리며 놀이에 집중한 아이를 바라보았다.

‘다행이다. 이 모든 것들이’

그리고 다시 묻게 되었다.

‘정말 다행인지’

육아의 고단함에 한숨짓던 순간이, 울먹이던 아침이, 화내고 소리치던 어느 날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다음 달이면 네 살이 되기 때문이다. 그저 품에 안고 있어 다행인지 아코디언처럼 접히는 아이의 시간에 촘촘한 사랑이 깃들었을지 돌아본다. 당연한 다행은 없었다. 그러나 정말 다행히도 나는 오늘 조금 후회하고 내일 아이를 더 많이 안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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