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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13. 2019

마흔 살 연말정산

후회 없었다 마흔 살


서른 살이 되는 날 내가 뭘 했더라. 구체적인 그날의 일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서른 살이 되던 순간만은 기억한다. 2008년 12월 31일 밤 12시에 TV를 켜놓고 보신각 타종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서른 살이 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늙은이 같은 말을 내뱉으면서. 한심했지만 그 말은 맞았다. 삼십 대가 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지만 또 틀리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나의 삼십 대는 꽤나 멋졌다. 누군가 딱 십 년의 생을 다시 살 수 있게 해 준다면 오래 고민하지 않고  삼십 대를 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소중했던 삼십 대의 첫 날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써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게 기억을 못 하는 정확한 이유이다. 그래서 사십 대의 첫 해는 곱씹어 쓴다.  1월 1일에는 통영 집에서 부모님과 율이와 함께 보냈다. 새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새집증후군과 사투를 벌일 동안 피신한 것이다. 이건 정말 훗날 내 마흔 살의 첫 날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이다. 마흔 살이 되었데도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더 돌아도 나는 오늘을 어제처럼 내일도 별다를 바 없이 살았다.

그중에도 2019년에 특별히 좋았던 일들을 써본다.

1.  아파트에 살게  것.
부모님의 품을 떠나 서울 살이를 하며 여섯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반지하 방, 원룸과 오래된 빌라를 전전하며 살았다. 집 때문에 전에 없던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고, 이사 다니느라 서러웠던 날이 많았다. 주인 할머니의 간섭이 고달팠던 마지막 전셋집에 살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 무척 좋은 집에서 출세한 것만 같아 뿌듯하다. 서울살이를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것도 집의 몫이 컸다. 아이러니하게 통장 잔고는 그때보다 적지만 마음이 가난하지 않다.



2. 율이가 어린이집에  것.
친정엄마는 육아로 힘들어하는 내게 늘 말씀하셨다. ‘낳아놓으면 다 큰다.’ 맞는 말이다. 시간을 이길 만한 장사는 없다. 율이는 기특하게 건강한 세 살을 맞이했고 어린이집에 갔다. 낯설고도 재미있는 자기만의 사회가 처음 열렸다. 그동안 엄마에게 커피 마실 시간도 주고, 낮잠 잘 시간도 주었다. 세 살의 효도란 건 이런 거다.



3. 율이와 같이 자는 .
율이는 태어나 집에 온 첫날부터 자신의 방에서 혼자 잤다. 아기 시절부터 자립심과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성취감을 심어주고 싶은 부모 마음 때문이었다. 율이는 엄마 아빠의 방해 없이 밤새 쿨쿨 잤고 그 덕에 나도 내 침대에서 밤잠만은 편하게 잤다. 열이 나면 가끔 심각해지는 증상 때문에 몇 달 전부터 밤에 같이 자기로 했다. 아이가 혼자 아플 걸 생각하니 자립심이고 뭐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걱정도 많은 부모 마음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자니 이것도 천국이다. 매일 밤 토실한 아기 곰 한 마리가 온 방을 굴러다니는 귀여운 장면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아기곰은 가끔 내 겨드랑이 사이에 끼여 잠들기도 한다.  



4. 적당한 거리의 친구가 생긴 
내게도 아이 친구 엄마들 모임이 생겼다. 사람 사귀는 일에 주저하는 내게 고무적인 사건이다. 율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엄마들과도 교류가 생겼다. 아이들 등원시켜놓고 가끔 커피를 마시고, 어느 날은 하원 후 함께 놀이터에 가기도 한다. 한 시간 남짓 함께 보내는 동안 아이들 자라는 얘기와 최근의 가벼운 고민들을 털어놓는다. 그저 들어줄 뿐 서로의 삶에 간섭할 만큼 가깝지는 않다. 그만큼의 거리는 묘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5. 오랜 친구와 하룻밤 외박한 
대학시절 4년간 룸메이트였던 조는 지금도 가까운 친구이다. 둘 다 결혼해 나는 육아 3년 차, 조는 올해 아이를 나았다. 조는 서울에 살고 나는 부산에 산다. 육아 고충을 털어놓으며 커피 한잔 마시기 힘든 시간과 거리를 유지한 채 살아가고 있다. 남편들의 지원 덕에 3년 만에 조를 만났다. 그냥 하룻밤 실컷 수다를 떨었다. 계획 같은 것도 없었다. 숙소 근처의 맛집도 아닌 어느 곱창집에서 막창을 구워 먹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에그타르트와 커피를 아침으로 먹었다. 그리고 아기와 남편이 목 빠지게 기다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1박 2일의 일탈이었지만 해외여행에 비할 데 없이 좋았던 날이다.


6. 이력서를 넣었다가 떨어진 .
동네 근처에 대형 유통회사의 쇼핑몰이 생겼다. 육아를 하고 여유 시간도 조금 생겨 직장으로 돌아가 볼까 하는 마음에 마케팅 부서에 이력서를 냈다. 그동안의 경력으로 지방 도시의 회사 마케팅 부서쯤은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거라 거만해져 있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2년간 육아로 인한 공백이 주된 탈락의 이유랬다. 실망보다는 현실 자각을 할 수 있었다. 막연한 취업보다 역시나 내 현실을 지키며 길을 만드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방향을 돌렸다.



7. 필라테스를 시작한 것
3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봄볕도, 아이의 사랑스러운 웃음소리도, 가벼워진 옷차림도, 살랑이는 바람마저 나를 겁에 쪼그라들게 했다. 우울증이 눈 앞에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 무렵 어디라도 벗어나고 싶어 간 곳이 필라테스 스튜디오였다. 몸에 기지개를 켜며 조금씩 마음에도 볕이 들었다. 고마운 시간이 이어지니 그렇게 살고 싶어 졌다.



8. 글을 쓰는 
일기도 안 쓰는 내가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사치였다. 지금에 와서 그 사치가 가져다준 마음의 풍요가 얼마나 큰 지 알 것 같다. 사치라는 단어를 눈 흘기며 봤던 과거를 미안해한다. 사치도 필요할 때가 있었다. 지금은 내 것이 된 이 시간을 마음껏 즐긴다.


늘어놓고 나니 새롭게 무언가 시작한 일들이 많다. 이러니 사십 대는 시작부터 기대를 하게 된다. 마음에 바람 들지 않고 차분히 주어진 길을 갈 수 있는 나이의 내공을 믿는 수밖에.

기뻐할 일이 아닌 순간에도 좋아서 다행이다. 입사에 실패한 일, 조그맣게 벌려 놓은 일도 망해 문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순간들은 그 나름의 의미를 찾아 다행이다. 포기보다는 해보는 타입이고 후회가 적은 내가 아쉬움으로 똘똘 뭉친 나보다는 좋다.

2019년의 남은 날들도 보통의 행복과 짜증과 반가움과 아픔을 겪으며 단순하고 소박하게 흘러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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