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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14. 2019

쫓기는 꿈과 꿈을 좇는 사람

꿈인 줄 알면서  깨어나지 못하는 꿈을 꿀 때가 있다. 어젯밤의 나는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가 있었다.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중이었고 다음날은 동아리에서 연극제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연극에서 내가 맡을 역할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몇 가지 관심 가는 역할 중 크롱 역을 맡고 싶다. 연극이 뽀로로였나 보다.

아직 대본을 읽어보지도 못한 상태다. 오늘의 기말고사를 먼저 치른다. 연극무대까지는 앞으로 딱 하루가 남았다. 드디어 대본 연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크롱의 대사가 심상치 않다. 시작부터 한 페이지다. 과연 이 대사를 모조리 외워 까먹지 않고 연기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막 대본을 읽으려는데 갑자기 건물이 흔들린다. 지진이다. 천장에서 콘크리트 덩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부서지기 시작한 계단을 내려간다. 분위기가 뽀로로에서 인디아나 존스로 바뀐다. 밟으면 무너져내리는 계단을 피해 가며 내려가는데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계단 위에서 JYP가 열정적인 춤을 추며 허니를 부르고 있다. 이 난리에도 춤과 노래라니 역시 프로페셔널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계단을 내려오니 운동장이 보였다. 지진 시 대피요령을 떠올리며 운동장을 향해 달렸다. 내가 뛰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다 같이 운동장을 향해 달렸다. 북적이는 운동장 가운데 서서 고민한다. 집에 전화부터 해서 무사히 살아있다고 알려야 하나 아니면 크롱의 대사를 외워야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혼란에 빠진다.  혼란스러움에 목이 칼칼할 지경이다. 기침을 한다.
눈을 뜨니 옆에서 율이도 같이 기침을 하고 있다.


꿈에서 깨니 새벽 다섯 시가 채 안되었다. 꿈의 생생함이 사라질까 봐 얼른 노트북을 연다. 이 시간에 이러고 있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는 거겠지. 현실로 돌아왔으니 대본을 더 이상 외우지 않아도 된다. 꿈이었을 뿐인데도 안심이 되었다. 얼핏 본 대본에서 크롱의 분량이 모노드라마 수준이었는데 크롱은 실제 말을 못 하지 않나?

요 며칠 하고 싶은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었다. 그래서 이런 꿈도 꾸나보다. 머릿속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줄을 그어 시간을 나누어본다. 조각 케이크 같은 시간에 배우고 싶은 것, 도전하고 싶은 것들을 겹치지 않게 꾹꾹 눌러쓴다. 쓰다 말고 머릿속의 동그라미를 지워버린다. 내 생에 동그라미 계획표를 지켜본 기억은 없으니까.

하나씩 하자. 욕심내지 말고.

생각하며 다시 다 못 잔 새벽잠에 빠져든다. 이번에는 다행히 꿈을 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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