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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비 Dec 15. 2019

타로카드와 무지개와 외국어

별 일 없이 사는데도 목에 고구마가 걸린 것처럼 인생이 팍팍할 때가 있다. 나태해진 직장생활, 소식 없는 연애, 만나고 돌아서면 허무해지는 인간관계. 그 해에는 난생처음 타로점을 봤다.  나름 크리스천의 소신이라고 지키는 게 점과 미신에 의존하지 않는 삶이었는데 거스르고 말았다. 만날 때마다 갑갑증을 토로하는 내게 어느 날 친구 조가 말했다.

“타로 한번 볼래?”
“나 그런 거 안 봐”
“그 아저씨 엄청 용해. 나 이직할 때도 맞췄잖아”
“그건 얻어걸린 거지.”
“뭐 그럴 수도 있는데, 속 시원한 얘기 들으면 밑져야 본전이잖아”
“돈 아깝진 않아 다행이네”
“전화번호 줄게.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나자고 해”
“그래 생각해보고”

시큰둥하게 대답했지만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날 수 있다는 얘기에 솔깃했다. 사실 안 가봐서 잘 모르지만 TV에 나오는 점집이나 타로카페는 분위기가 으스스해서 누가 같이 가제도 두려울 것 같았다. 나는 대부분의 무서운 것에 엄청 겁이 많은 편이다.

조를 만난 지 몇 달이 지나고 여전히 갑갑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갑갑증에 용한 병원이 있으면 속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고, 결혼은 할 수 있을지 막막하고, 회사에서 매일 까이는데 잘 듣는 약을 처방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구두 뒷굽이 닳아 걸을 때마다 또각 소리가 유난히 심하던 그래서 짜증이 폭발할 것만 같던 어느 퇴근길에 타로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 뒤 동네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 타로 아저씨와 마주 보고 앉았다.


“직장은 어떻게 될까요?”
“외국 나가서 일하세요. 아니면 외국에 출장이라도 다니는 일을 하든가.”


“결혼은 어떻게 될까요?”
“외국인을 만나세요. 아니면 적어도 외국에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든가”


“이 땅에선 답이 없나요?”
“답은 있죠. 계속 지금처럼 살면 돼요”

밑져야 본전이라더니 돈 아까운 얘기였다.

스트레스가 크긴 해도 꼬박꼬박 월급 주고 연말이면 보너스도 주는 회사를 관두고 외국의 회사를 기웃거릴리는 만무했다. 이 작은 나라에서 매일 수많은 남자들과 부딪히며 살아가는데도 못 만나는 내 짝을 외국에서 만날 확률은 더욱 미미했다. 어쩌면 외국에 있어서 그동안 못 만났을지도 모르지만.

타로 아저씨의 말은 대부분 잊고 살았지만 가끔 여행을 갈 때면 외국에 나의 운이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여행길이 조금 더 설레기도 했다. 어쩌면 운명의 남자를 만나거나 인생이 바뀔만한 기회와 마주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새로운 운명이 내 눈 앞에 도사리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뀌는 일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누구나 지루한 일상을 흘려보내다 무료함의 끝에서 역술가가 말했던 희망적인 단어 하나를 떠올리곤 불안한 희망을 갖기도 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2014년 2월의 어느 날 아침을  아랍에미리트의 한 공항에서 맞이했다. 남미로 출장을 가던 중 경유지였다. 중동의 낯선 나라 공항에 몇 시간 머무는 동안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내가 아는 사람을 떠올렸다.  아랍의 어느 사막에서 일을 하고 있는 친구였다. 같은 나라에 잠시라도 머물고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생전 처음 듣는 내 목소리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사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얼굴도 모르는 사이였다. 어색해하면서도 반갑게 안부를 묻고 나자 할 말이 없어 얼른 통화를 끝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친구였지만 지금은 나의 남편이기도 하다.


타로 아저씨를 만난 지 2년쯤 지났을 무렵인데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회사에서는 일 년에 서너 번 외국 출장을 가야만 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공항에서의 짧은 전화통화를 계기로 알던 친구는 남자 친구가 되었다. 타로 아저씨가 미래를 예언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남편과 결혼을 하기까지 영향력이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나에겐 외국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었고, 누구나 로망은 실현시키고 싶은 욕망을 가졌으니까.


여전히 미신이나 점을 믿지 않는다. 다만 저 무지개 너머에 어떤 멋진 삶이 있을 것만 같은 불안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엄마나, 적금통장 같은 믿을 구석 말고, 딱히 실체는 없지만 어깨 펴고 살게 하는 어떤 것들 말이다. 나에겐 외국에 대한 동경이 그랬던 것 같다. '여기서 안되면 외국으로 가면 되지'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이 내 불안했던 삼십 대 중반을 포커페이스로 살게 했다.


 정해진 미래는 없지만 때로는 우리가 가진 불확실한 희망이 미래를 이끌기도 하는 것 같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해야만 할 때, 우유부단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고 결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것은 로망 같은 허무한 것일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로망이 꼭 허무하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이번 주에도 누군가는 로또에 당첨되니까.


외국으로 가자는 희망은 그래서 여전히 내게 유효한 무지개이다. 근거도 없고 확신도 없지만 밑져야 본전이니까. 외국에서 글을 쓰고 필라테스 강사를 하려면 내년에는 외국어 공부도 해야 되겠네. 할 일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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