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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율밤 Nov 30. 2022

독립은 내 운명

‘이 지긋지긋한 동네. 언젠가 꼭 뜨고야 말리라.’     


교복을 입고 하교를 하던 어느 날, 저 다짐을 했던 것이 나의 독립, 자취, 혼(자 사는)삶을 향한 열망이 담긴 최초의 기억이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에 갔다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로 돌아오면서 그 길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생생히 기억이 난다. 기껏 해봤자 18, 19살이었을텐데, 뭐가 그렇게 지겨웠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기였을 때부터의 내 얼굴을 알고 있는 오래된 이웃, 유치원도 함께 다닌 소꿉친구, 매일 어울려 놀았던 학교 친구들이 살고 있는 가족의 품 같은 동네였는데.   

   

그러나 저 마음이 시작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게 10대 때부터 낯선 곳에서 혼자 살아보는 삶을 꿈꿔왔다. 그러니 사실 뚜렷한 계기랄 것까지는 없다. 독립을 바라는 마음만이 어렸을 적부터 뚜렷했던 것이다.  

스무 살, 대학교에 입학해 일어일문을 전공했는데, 당장 교환학생으로 떠날 비용은 없었지만 입버릇처럼 ‘졸업을 하면 다만 6개월이라도 혼자 일본에서 살아볼 거야.’ 하고 다짐을 하곤 했다. 그러나 졸업을 기다리던 그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학교에서는 일본으로 떠났던 학생들을 서둘러 귀국시켰고 교환학생 프로그램도 (내 재학시절엔) 잠정 중단되었을뿐더러, 교수님들은 앞으로는 위험하니 일본으로 살러 가지 말라고 하셨다.     

 

교수님들이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라니.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면서까지 일본행을 선택하고 싶진 않아서 졸업 후 혼자 일본에서 살아보겠다는 희망은 고이 접었다.      


졸업 후, 일본행을 선택하지 않고 취업 준비생으로 직장의 문을 두드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확실하게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전전했고 개인적인 경제 사정은 본가가 서울에 있는데 따로 나와 집을 얻고 생활을 꾸려갈 만큼 여유롭진 않았다. 그래서 ‘아직은 아닌가보다.’ 하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그 때도 독립의 꿈을 꾹 눌러 참았다.      


서른 살, 나름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게 됐을 때 바라마지 않던 독립을 곧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아이고, 더는 못하겠다’ 할 때까지 긴축 재정의 시간을 보냈다. 다만 얼마간의 돈이 모인 후 독립하기에 좋다고 생각했던 후보 동네들의 부동산에 연락부터 해봤다. 그 과정 중에 서울에서 1인 가구로 살기 위해 집을 알아보는 일이 얼마나 쓴맛인지 경험했다. 몇몇 부동산에서 공인중개사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하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안돼. 돌아가.’라고 말하는 듯한 단호한 거절을 느꼈었다. 지금은 ’나도 참 뭣도 몰랐지.’ 하고 웃을 수 있지만 그때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부동산에서 뒤돌아 나오곤 했다. 원래 살고 싶었던 동네는 생각해둔 예산보다 전세가가 훨씬 웃돌았고 점점 가본 적도 없는 동네도 후보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알아볼래, 조금만 더.’ 하는 심정으로 생전 와본 적도, 친인척도, 친구도 한 명 없는 대방동까지 오게 됐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처음으로 전세를 얻은 곳은 신축 건물의 마지막 전세 매물로 나온 코딱지만한 방 한 칸이었는데, 그 방 구경을 하자마자 더 좋은 컨디션의 집을 얻을 수 없겠다는 확신이 들어 덜컥 가계약을 마쳤다.    

  

가계약을 마친 날, 본가에 돌아와서 따로 나가 살 집을 구했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께서는 ‘혼자 살아보고 싶다, 이 집에서 나가겠다 했던 큰딸이 기어코 저지르고야 말았구나.’ 하는 심정으로 이해해주셨던 것 같다.      

 다시금 계기와 (독립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이제 와 살짝 염려가 되는) 혼자 사는 삶을 시작하게 된 일련의 과정을 돌이켜 글로 써보니 제대로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막무가내 고집을 더해 밀어붙인 시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막 독립했을 적에 그래야만 하는 사정 없이 혼자 살기 시작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대학교가 집에서 통학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거나 일터가 집에서 아주 멀기 때문에 자취를 해야 하는 경우를 빼고 순전히 혼자 살아보고 싶어서, 함께 다녀줄 집안 어른도 없이 낯선 동네의 부동산을 다니고 공인중개사들을 만나고, 들어갈 집의 건물등기부등본을 떼보고, 근저당률을 계산해보고, 전세보증금보험을 알아보고 했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시간은 너무나도 혼자 살아보고 싶었던 열망이 만들어낸 내 운명이다.     


2021년 기준으로 서울 1인 가구의 비율은 전체 가구 수의 36.8%를 차지한다고 한다. 혼자 살게 된 다양한 사정들이 있겠고, 그중엔 나처럼 혼자 살기를 갈망했던 사람도 있을 테다.      


못해도 서울시 10명 중의 3명 정도는 혼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들과 연대하고픈 마음이 생겨난다. 각각의 1인 가구가 혼자 살고 있되 아주 외롭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혼자 살게 된 계기를 이야기함을 시작으로 혼자 사는 이들의 공감과 위로의 버튼을 눌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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