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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율밤 Dec 04. 2022

밥은 먹구 다니니?

1인 가구의 식생활

1인 가구의 식생활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터넷의 짧은 글이 있다.      

‘혼자 살면 해 먹는 것보다, 사 먹는 게 훨씬 낫다.’     


사 먹는 것이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조리를 하고 먹는 것보다 비용적인 측면에서나 소요되는 시간에서 훨씬 효율적이라는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랬다. 뭣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퇴근길에 장도 보고 부엌에 서서 30분에서 1시간이나 걸려 밥을 해 먹는다는 것은 돈과 시간이 매우 아까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 자연스럽게 퇴근길에 반찬 가게를 들렀다. 


반찬 가게에는 없는 반찬이 없었고, 집 근처 시장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포장해서 집으로 가져갔다. 시장에는 늘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들이 많았다. 족발, 피자, 치킨, 곱창, 순대. 간편하게 편의점에서 파는 컵라면, 삼각김밥 등의 먹거리로도 식사는 뚝딱 해결되곤 했다. 


독립하고 나서 퇴근 후 저녁으로 너구리 라면에 기네스 흑맥주를 먹었던 날 ‘이 기가 막힌 조합을 왜 여태껏 몰랐을까.’ 하고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회사에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31가지 맛을 파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좋아하는 맛으로 아이스크림을 잔뜩 담아와 집에서 밥숟가락으로 퍼먹기도 했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1인 가구인만큼 예정에 없던 약속이라도 잡아 술을 곁들인 외식을 하는 일도 많았다. 공복을 오래 견디지 못해 아침 식사는 급하게 시리얼에 우유, 식빵에 우유로 하고 그마저도 못 먹었으면 회사에서 과자, 초콜릿, 달달한 라테로 첫 끼니를 때우곤 했다.       


사람들이 모두 급격히 살이 찐다는 고 3 때도 살이 많이 찌지 않았던 내가 체력과 체중이 끄떡없을 줄로만 알고 이런 식생활로 1년여 정도 시간을 보냈을 즈음, 예전과 다르게 숨이 찬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이 조금씩 안 맞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여태 들은 적이 없던 “살이 찐 것 같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러한가 싶어 딱히 필요가 없다고 느꼈던 체중계를 집에 들였다. 매일 아침 몸무게를 재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싶은 날을 보내다가 어느 순간 회사에 입사했을 때보다 8kg나 체중이 증가했음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인생 최고 몸무게잖아! 이보다 더 심각해질 수는 없다.’     


1인 가구의 방종한 식생활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 후 체중 감량을 목표 삼고 운동을 시작했다. 퇴근 후 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면 헬스장에 가거나 산책을 다녀오곤 했다. 확실히 운동량은 많아졌는데도 체중 감량은 20대 때와 달리 요원했다. 결국 제일 바꾸고 싶지 않았던 식생활에 변화를 주기로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무얼 먹었는지 식단일기부터 적었다. 일단 먹는 것을 줄이려는 노력 없이 먹은 그대로 적어봤더니 군것질과 힐링하는 시간을 가진다 생각하며 마셨던 혼술의 비중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아쉽지만 과자와 고칼로리 안주를 곁들이던 혼술의 비중을 줄였다. 시장표 포장 음식도 줄이고 아이스크림 가게에는 발걸음을 끊었다.


그렇게 빈 공간이 생긴 식단에 닭가슴살을 잠시 채워봤다. 아침은 안 먹으면 안 먹는 대로 습관이 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종종 굶어보기도 하고, 저녁에는 빈약한 샐러드에 퍽퍽한 고구마를 곁들여 먹었다. 그러자 살은 조금씩 빠지기 시작한 것 같았지만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침내 따뜻한 집밥이 그리워졌다. ‘한국인은 밥인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어느 날 잘 쓰지 않던 전기밥솥 위의 먼지를 털어냈다. 본가에서 보내주신 쌀과 잡곡을 한껏 넣어 잡곡밥을 가득하고 한 끼 먹을 만큼씩 소분해서 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몇 달간 아침엔 그렇게 준비한 밥으로 식사를 해봤는데, 밥만 먹어서는 회사의 점심시간까지 포만감이 이어지지 않아서 그 사이에 간식이 당기는 걸 느끼고 아침 공복에 먹으면 좋다는 음식을 찾아봤다. 사과와 달걀이 좋다고 해서 퇴근하고 와서는 사과를 씻어놓고 달걀을 삶아놓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로는 사과와 달걀이 포만감이 가장 오래가고 속이 편해서 가장 만족스러운 한 끼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점심에는 자유롭게 회사 사람들과 함께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냉동시켰던 밥과 양배추 볶음, 두부, 닭가슴살, 김치, 낫또를 반찬 삼아 국물류가 없는 저녁을 해 먹기 시작했고 입이 심심하면 늘 먹던 과자 대신 포도 등 과일을 조금 먹고, 매일 회사에서 마시던 달달한 커피는 시럽이 들어가지 않는 라테로 바꿨다.     


퇴사를 한 요즘은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해져서, 아침에는 올리브유에 방울토마토와 채 썬 당근, 견과류를 볶고, 올리고당이나 꿀을 뿌린 당근 토마토 샐러드를 해 먹고, 완두콩, 검은콩, 병아리콩, 옥수수를 번갈아 넣어 한 밥을 먹고 있다. 저녁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엔 사과, 그래놀라 혹은 단호박 에그 슬럿, 감자 샐러드를 먹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 끼를 먹을 때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섬유질이 들어갔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부족한 영양소 없이 먹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편이다.      


아직도 배달 음식을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고, 열혈 다이어터처럼 엄격한 식단대로 먹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먹고 싶은 것을 아주 참지 않는, 먹보 기질이 다분히 남아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방종하고픈 만큼 방종해질 수 있는 1인 가구의 식생활에는 마침표를 찍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1인 가구는 나처럼 가족들이 집에 자주 들러 냉장고를 열어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식생활에 소홀해지기가 쉽다는 생각이 든다. 도처에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널려있는 세상이니까.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말엔 배달의 민족이라는 답이 나올 정도로 배달도 잘 되니까. 이렇듯 먹을 것은 넘치고, 1인 가구로 살면서도 몸무게 걱정이 없어, 식단 관리를 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자기가 무얼 먹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봤으면 좋겠다.      


파는 음식에도 만든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 있겠지만, 좋아하는 완두콩을 넣은 밥맛, 꿀과 올리브를 넣고 냉장고에서 시원하게 재운 방울토마토 마리네이드의 새콤달콤함, 여름 하지 감자의 폭삭폭삭한 식감 이외도 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집밥의 맛, 본인이 좋아하는 요리를 맛있게 해냈을 때의 뿌듯함은 손쉽게 사 오는 음식이나 배달된 음식과는 또 다른 기쁨을 선사해주기 때문이다.      

 

모든 1인 가구의 식생활이 손쉽고 간단하지만 외로운 맛이 아니라 조금은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더라도 따뜻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안녕한 맛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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