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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율밤 Dec 06. 2022

사실은 아직도 혼자 사는 게 무서워요

나는 겁이 많다. 무서운 이야기가 시작되면 귀를 막고, 영화나 드라마 속 귀신이 나온다거나 사람을 해치는 잔인한 장면에서는 손으로 눈을 가린다. 학생 때, 시험이 끝난 후 친구들이 교실 큰 티브이로 [배틀로얄]이라던가, [텍사스전기톱살인사건] 같은 영화를 틀어놓으면 티브이를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무서운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겁도 많은 데다 신체적으로도 예민한 편이다. 소음, 빛 등에 예민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해서 어렸을 땐 배앓이도 자주 했다.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친구들은 나를 개복치라고 불렀다. 예민한 개복치.       


 앞서 올린 글 ‘독립은 내 운명(혼자 살게 된 계기)‘에서 이야기한 대로 혼자 살아보고픈 욕심으로 밀어붙여 시작한 독립이지만, 예민한 개복치인 내가 처음부터 마음 편안하게만 살 수 있을 리 없었을 것이다.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 잠든 사이에 누군가 집에 들어오는 악몽을 자주 꿨다. 내 첫 전셋집은 매우 좁은 원룸이어서 누우면 현관문이 바로 보이는 곳이었는데 검은 그림자가 그 현관문에서부터 내게 다가오는 악몽을 현실감 넘치게 꾸곤 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옴짝달싹 못하는 내게 다가온 그 검은 그림자는 내 팔을 쓰다듬고 만지고 기분 나쁘게 웃었다. 몇 년이 지난 꿈인데도 다시 떠올리면 마음속으로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악몽의 내용은 난생처음 혼자 살기 시작한 나의 두려움이 생생하게 그려낸 시나리오였다. 그 당시의 나는 누군가 여자 혼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나쁜 생각을 할까 봐 배달 음식도 아예 시켜 먹지 않았고 무겁더라도 회사로 물품을 배송받고 집으로 들고 오기를 반복할 만큼 치안에 대해 겁먹은 상태였다.

    

단독주택에 살던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이웃의 소리도 스트레스였다. 옆방이나 윗집에서 시끄럽게 하면 신경이 쓰여 쉽게 잠들지 못하는 날도 부지기수였고, 직접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속으로만 고민과 분노를 함께 삭이는 날들이 이어졌었다.


 그래서 신당동 본가에만 들렀다 하면 잠이 쏟아졌다. 본가에는 늘 가족들이 있어서 마음이 편안했기 때문이리라. 본가에 들르는 시간이 대낮이라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해서 한숨 잠들고 마는 내가 밤에 이러이러해서 잠도 못 잔다 이야기를 아버지께 했더니, 아버지는 “그렇게 겁도 많은 애가 왜 그렇게 혼자 나가 산다고 했냐.” 하셨다. ‘그러게유. 아버지. 그렇게 겁도 많은 내가 왜.’하고 마음속으로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때 이런 이유들로 잠이 부족해서 부쩍 피곤해하는 걸 알고, 친구는 밤에 살짝 켜고 자라며 무드등을 선물해주고, 회사 동료는 숙면에 좋은 차라며 마실거리를 선물해줬었다. 주변 사람들의 고마운 마음들이 모여 큰 힘이 돼줬다. 잠들기 전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려 한밤중에 깰 때면 무드등을 켜고, 어스름하지만 방구석구석을 비추는 따뜻한 빛을 보며 안심하고 다시 잠들 수 있게 됐다.      


시간이 흘러가며 그렇게 혼자서도 편히 잠들 수 있게 되었지만, 두려움이 그려내는 시나리오는 나의 악몽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요새도 느끼고 있다.


2년 전 인터넷에서 ‘강간미수 혹은 주거 침입 미수’의 적용을 두고 한참 시끄러웠던, 신림동 CCTV 사건을 떠올리면 낮은 가능성일지언정 혼자 사는 여성에게 형사 사건에 휘말릴 위험은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게는 그런 일이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두 번째 전셋집으로 이사 왔을 때 넘버 도어록밖에 없어서 집주인 아저씨께 열쇠로 여는 손잡이를 하나 더 달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여태 안 좋은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고 허락해주시지 않았다. 내 돈 주고 달 건데도 그리 말씀하시니 세입자 입장에서는 맘대로 손잡이를 달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 퇴근하며 집에 들어오려는데 넘버 도어록의 덮개가 올라가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아침에 정신이 없어 나도 모르게 도어록 덮개를 올린 채로 출근을 했나 보다 싶어 그냥 넘기고, 다음날부터는 도어록 덮개를 내린 걸 확인하고 출근을 했는데, 그 후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또 도어록 덮개가 올라가 있는 걸 발견했다.


누가 어째서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어록 덮개를 열고 비밀번호를 눌러보는 것까지 시도해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자 마음이 굉장히 섬찟했다.


집주인 아저씨께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고 cctv를 확인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건물 내부엔 cctv가 없어서 누가 그랬는지는 확인이 안 될 것 같다고 하셨는데, 이후에 집주인 아저씨 아들이 내가 사는 곳 문 앞에 웬 아저씨가 얼쩡거리는 걸 봤다고 하시더라면서, 나보고 누가 찾아올 남자가 있었냐고 물어보셨다. ‘그럴 사람도 없을뿐더러 저희 가족들은 방문하기 전에 저한테 말하고 온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래도 나쁜 일이 일어난 적은 없는 건물이라면서 걱정 말라고 하시더니 혹시 몰라 열쇠 손잡이 달고 싶다고 다시 말씀드렸을 때 그제야 허락하셨다.

  

누군가 함부로 내 집에 들어오는 꿈은 더 꾸지 않지만, 여전히 조심하는 것들이 많다. 택배를 받더라도 한눈에 여성일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내 이름은 사용하지 않고 받는 사람은 남동생 이름으로 한다던지 베란다에는 방범창이 있지만, 슬라이드 락으로 창문이 조금만 열리도록 설치해놨고, 넘버 도어록 외에 열쇠를 사용해 현관을 잠그고 나온다. 신림동 cctv 사건을 생각하면 지금도 오싹해서 집으로 들어오기 직전 공동현관에 잠깐 1-2초 정도 멈춰 서서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는지, 공동현관문은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하고는 한다. 배달음식도 직접 건네받는 일은 없고 문 앞에 두고 가주시기를 요청하고 있다.     


올해로 혼자 산 지 5년 차, 가족들과 함께일 때보다 더 신경 쓰고 조심하며 사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범죄 사건에 휘말릴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하면서 안전하게 살고 싶고 나를 포함한 혼자 사는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공간에서 무서워할 일 없이 물리적, 심적으로 안전함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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