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아버지

by 수요일

나이 먹은 유전자

누구나 기억하는 건 좋아하는 아버지의 모습이겠다만 아버지를 닮은 것을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다. 그다지 나쁜 기억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어쩌면 내 인생의 불만에 대한 마지막 귀착점 같은 것이라서 언뜻 언뜻 비치는 내 얼굴의 아버지가 싫었다.

살아오는 동안 자주 썼던 표정이 아버지와 다르니 눈 모양이 다르고, 찌푸린 순간도 달라서 아버지와 같은 모양의 주름이 생기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다른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해서 입모양도 다르다. 그렇게 다른 이유를 대가며 같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 바라보니 영락없는 아버지 눈, 아버지 코, 아버지 입이다. 이제라는 이 순간은 바로 어린 내가 바라보던 아버지 또래의 얼굴인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나이에 다다르니 아버지의 얼굴이 돌아오는 것이다. 나처럼 젊을 때의 아버지의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하게도 나는 아버지와 닮지 않았다고 믿었던 거다.

씨도둑을 못한다는 말이 실감나게 닮은 내 얼굴을 보면서 이제는 아버지를 조금 더 좋아해야겠다 싶다. 가난과 찌듦과 어려운 세상을 남겨주었지만 또 그래도 이만큼이나 살아올 수 있었던 게 아버지의 질긴 머리유전자, 몸유전자, 마음유전자 탓일 테니 말이다. 또 한 살을 먹으며 나는 아버지에게 더 다가간다. 나의 나이 먹은 유전자는 한 걸음 더 아버지를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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