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03

단편소설

by 수요일

단편소설_꽃비

*

3

꽃비에게 누군가 감독과 이야기하는 게 들렸다.

이거 결정된 카피하고 다른데요? 이래도 되나요?

감독이 반응이 없자 그 말을 한 사람이 꽃비에게 말했다.

결정된 카피로 해주세요. 지금 바꾸면 나중에 골치 아플 수도 있어요.

겨, 결정된 카피요? 아까 그거요? 말하는 거 같지 않다고 해서 말하는 거로 바꿨는데요. 그, 저기... 많이 이상한가요?

꽃비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아 그 말하듯 하라는 그게 그게 아니고요, 책 읽듯 하지 말고 말하는 것처럼 말하라는...

그때 감독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나는 모델 분이 하신 게 더 좋은데요?

그러게, 나도 그게 더 좋은데?

직원들이 찬수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결정권자는 찬수였다.

꽃비 씨, 지금 말한 거 그대로 기억해요?

네, 말하는 대로 나온 거라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비슷하게는요?

아 걱정마세요. 멘트 친 거 녹음 있어요.

나도 그게 더 잘 들어와요. 그거로 하죠.

카피라이터가 당황해서 말했다.

그럼 좀 손을 대볼까요?

아니 그냥! 그대로 좋겠어요.

찬수가 대답했다. 오케이! 라고 감독이 말하고 꽃비가 말한 걸 받아적으라고 했다. 그 카피 대로 촬영이 여러 번 진행됐다. 연기도 꾸밈 없는 꽃비 그대로 했다. 원래 직원이 직접 홍보하는 콘티에서 소비자가 맛을 묻는 콘티로 내용이 바뀌었는데 한결 더 자연스러워졌다. 게다가 맛없으면 반품! 맛있으면 명품! 이라는 마지막 말이 재밌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때 누가 맛있게 먹고 진짜 반품 하면 어쩌냐는 말을 했다. 찬수가 그 말을 딱 끊었다.

그런 진상에겐 안 팔아. 노숙자 밥 한끼 줬다 치고 말지.

맛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멋진 한 마디였다. 하지만 찬수의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냉가는 실제로 한 달에 네 번, 쉬는 날마다 무상급식을 했다. 사업이 자리를 잡자마자 찬수는 사회에 환원해야 사업도 잘 된다며 무상급식을 할 것을 결정했다. 그 날은 주방에서 두 명, 홀에서 두 명이 번갈아가며 당직을 했는데 직원들은 유급으로 일하는 개념이라 큰 불만이 없었다. 물론 메뉴는 일반적인 냉면 한 가지였고 하루에 300그릇으로 제한해서 두 명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무상으로 먹는 사람은 노숙자이거나 13살 이하 어린이, 60세 이상 노인으로 제한하기는 했지만 대충 육안으로 봐서 문제 없으면 아무 제지 없이 유명한 냉면집의 냉면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게 소문이 나자 냉가 본점 앞은 한 달에 네 번, 새벽부터 장사진이 펼쳐졌다. 300명에게만 주어지는 특식이라 그런 진풍경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 날은 꽃비와 구멍이가 당직으로 300개의 냉면 사리와 국물을 만들었고 홀에서는 한 명이 담아주는 역할을, 또 한 명은 먹고 나간 자리를 정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찬수가 나와서 같이 하는 날이라서 공짜 냉면 먹는 사람들은 진짜배기 냉가 냉면을 맛보는 행운도 누렸다. 찬수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다른 일이 있다며 가게를 나갔다. 그리고 꽃사슴이 돌아왔다. 요란하게.

꽃사슴은 꽃비가 화장실 해프닝이 있었던 날 만난 남자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구멍이에게만 그 이야기를 했는데 구멍이가 재밌다며, 꽃사슴을 숨겨준 나뭇꾼 이야기와 똑같네 하고 웃었다. 그 남자를 꽃사슴이라 해서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사슴이 나뭇꾼의 은혜를 갚은 거 알지? 그 꽃사슴도 우리 꽃비에게 은혜를 갚아주면 참 좋겠다.

구멍이의 눈이 아련해지는 걸 보고 꽃비가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

짜악! 난 숨겨준 거 아니거든? 정신 차렷!

그런데 은혜를 갚기는커녕 꽃사슴은 꽃비를 만날 때마다 사고나 안 치면 다행이었다. 이 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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