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04

단편소설

by 수요일

단편소설 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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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꽃잎을 밟고 나서야 아우성을 들었다. 꽃잎마다 깊이 새겨진 자국은 갈 곳 없는 그리움. 나는 꽃잎을 밟은 게 아니었다. 꽃잎의 그리움을 짓밟은 거였다.

손님, 죄송합니다. 오늘은 저희가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날 다시 오시면,

손님 아닌데요?

아... 죄송합니다. 그럼 어떻게 오셨는지?

밥 먹으러 왔는데요?

그러니까요. 하하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오늘 밥 주는 날 아니에요?

네?

오늘 공짜로 밥 주는 날 아니냐고요.

그렇긴 합니다만 대상이 제한 되어 있어서요. 연로하신 분이나 아이들이나 혹은 노숙하시는 분들에게,

네 맞아요. 저 노숙해요.

식탁을 정리하던 직원이 멀끔한 공짜 손님을 다시 바라보았다.

저기요, 오늘은 저희 냉가가 사회환원 차원에서 무상급식을 하는 날이라서요.

네, 알아요. 몇 번이나 말해요. 밥 먹으러 왔다고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직원이 난감해하며 꽃비를 찾았다.

어쩌죠?

구멍이가 슬쩍 어깨 너머로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노숙자 아닌데요? 그냥 공짜로 한 끼 해결하려는 사람 같아요. 어차피 300그릇 다 나갔어요.

꽃비가 보니 낯이 익은 남자다. 자기도 모르게 말이 사슴으로 바뀌어 튀어나왔다.

사슴.

구멍이가 그 말을 들었다.

어? 진짜?

직원이 어쩔 거냐고 묻자 꽃비가 괜찮다고 말하고 천천히 식탁으로 다가갔다.

당신은 그때 그?

아 너로구나? 배고파. 밥 줘.

헐,

어이가 없었다. 꼭 맡겨둔 거 내놓으란 태도다.

오늘 준비된 게 다 끝났어요. 다음에 오세요.

끝났어? 에이 뭐야. 밥 공짜로 준다고 해서 일부러 온 건데. 그러지 말고 한 그릇 더 만들어와.

문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끝났단 말에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몇몇은 버티며 꽃비와 꽃사슴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냥 한 그릇만 줘.

꽃비가 문앞에 기다리고 선 사람들을 가리켰다.

자 봐요. 저 분들은 새벽부터 와서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오늘은 기회가 없어요. 당신도 공짜로 먹고 싶으면 새벽부터 기다려요. 그리고 너 몇 살인데 계속 반말이냐?

잘 참는 꽃비지만 그만큼 한 번 터지면 야무지게 터졌다.

나? 스물 일곱인데? 넌?

난 서른 일곱이다. 어서 나가. 오늘 분량은 끝났어. 어서 일어나.

참 나. 보기보다 늙었네. 아무튼 밥 줘. 며칠 굶었는지 몰라.

없어. 없다고. 있어도 너보단 저 사람들 먼저 왔으니 저 사람들을 주겠다.

꽃사슴이 문 쪽을 바라보더니 벌떡 일어나서 두 팔로 안쪽에 있던 노인을 밀어내고 문을 닫았다.

오늘은 끝났다잖아. 사람들이 왜 양심이 없어? 끝난 거 알면 얼른 가야지 대체 왜 버티는 거야?

문을 쾅 닫으며 욕지거리를 한 꽃사슴이 자리로 돌아와서 말했다.

자, 이제 아무도 없어. 이제 밥 줘.

꽃비가 황당한 눈으로 꽃사슴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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