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단편소설 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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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
레시피를 생각하며 재료 공부를 하던 꽃비가 또 다시 책상에 엎드려 잠들었다. 꽃비는 스스로 침대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도 있었다. 아침에 깨어보면 책상인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니 아침이 아닌데 깼다. 후두두두, 비가 오나 창을 열어보니 제법 내린다. 얼른 창문을 닫고 봄 한복판인데도 쌀쌀한 기분에 보일러를 켰다. 방 온도는 18도, 22도에 맞춰 보일러를 켜고 의자에 앉다가 문득 현수가 생각났다. 비오는데 갔나? 문을 여는데 안 열린다. 힘 주어 밀어내니 빼꼼 열렸다.
어? 야! 야! 일어나봐, 현수야!
현수는 딱 그만큼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처마 밑에 쪼그리고 누워 자고 있었다. 담요를 둘둘 감았지만 발은 비에 흠뻑 젖고 있었다.
일어나봐! 거기서 자면 감기 걸려!
응? 에취!
현수가 코를 훌쩍거리며 눈을 떴다. 아 추워, 하며 담요를 여몄다.
거기서 자면 어떡해?
그럼 어디서 자? 안에?
집에 가면 되잖아. 왜 그래. 곤란하게.
마음 약한 꽃비다. 비는 점점 거세게 내렸다. 봄비 치고는 꽤 내린다. 비를 한참 보던 꽃비가 문을 열고 안쪽으로 물러났다.
들어가도 돼?
눈치 챈 현수가 말이 끝나고 대답도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현관 옆에 담요랑 신발을 벗어놓고 화장실? 하고 물었다. 꽃비가 한쪽을 가리켰다. 현수가 한 걸음에 현관에서 화장실로 뛰어 건너갔다. 어? 욕조다! 라고 작게 외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뜨거운 물 나오니?
잠깐만, 이라고 대답하고 꽃비가 온수를 눌렀다. 좀 있어야 나올 거야. 라고 말해주었다. 오케이! 현수가 대답했다. 잠시 후 욕조에 물 받는 소리가 들렸다. 크진 않지만 타일로 장식된 옛날식 욕조였다.
나도 물값 가스값 무서워서 아주 가끔 쓰는 건데...헐,
꽃비가 중얼거렸지만 곧 이해하기로 했다. 모처럼일 거잖아. 개운하게나 씻어라. 1시간이나 흘렀다. 물이 흘러넘치는 소리 대신 샤워기 물 트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아마 욕조에서 잠든 거 같았다. 꽃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을 손에 잡아도 눈에 안 들어왔다. 누군가가, 특히 남자가!!! 집에 들어온게 처음이라 꽃비는 불안해졌다.
꽃비야,
현수가 불렀다. 왜? 대답하자, 옷 없어? 내 옷 다 젖어서 입을 수가 없는데? 란다.
야! 무슨, 너에게 맞는 옷이 나한테 있겠냐?
아무거나 줘봐!
돌겠네.
라고 대답은 했지만 현수가 입을 만한 츄리닝을 찾아 문 앞에 놓고 말했다.
문 앞에 놨어.
오케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꽃비가 놀라서 얼른 고개를 돌렸다. 아씨 신호도 없이 저게.
와 정말 오랜만에 몸이 가벼워졌네.
가벼워져? 무슨 말이야?
오랜만에 몸에 붙은 것들을 쫘악 빼내니까 가벼워졌지!
으엑, 너 너 너 야! 다시 들어가!
왜?
얼른 들어가! 들어가서 청소 싹 하고 나와! 빨리 빨리 빨리 빨리!
현수가 뭐하고 하려다가 그래 그러지 뭐. 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꽃비가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자기 추리닝 바지를 입은 현수는 바지 끝이 종아리에 달랑 걸친 모습이라 자꾸 웃음이 나왔다. 현수가 욕실 청소 다했다 하고 나왔다. 꽃비가 가서 보니 제법 깨끗해서 안심했다. 현수가 코를 찡긋거리며 말했다.
킁킁 이거 무슨 냄새야?
냄새? 무슨 냄새 나니? 네 비누 냄새겠지!
아닌데? 음... 너 생리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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