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꽃비 10
찬비에 젖은 꽃잎들을 모아 새책에 꽂았다. 꽃잎의 눈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림, 기다림 사이 그리움, 사이 사무침. 사이 무심하게 꽃 지고 내린 비.
잠들었다. 잠 들 줄 몰랐다.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있는 방에서 꽃비는 잠들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현수는 침대에 기댄 채 잠들어있었다. 처음엔 그리도 낯선 낯익은 냄새들이었는데 자신의 바지를 입고 자신의 티셔츠를 입고 기대어 잠든 낯익은 냄새는 시간이 지날 수록 자신의 방에 동화되는 듯했다. 꽃비는 스스로가 신기했다. 자다니. 혹시나 현수가 깨어있을까봐 책상에서 머리를 들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이 급하게 되었을 때 벌떡 일어났다. 출근시간 초임박. 현수 쪽을 바라본 꽃비가 황당한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현수는 너무나 당당하게 꽃비의 침대 속에 들어가 꽃비의 이불을 덮고 꽃비의 베개를 베고 잠들어있었다. 아, 탄식과 함께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꽃비가 일단 씻으러 들어갔다. 샤워는 꿈도 못 꾸고 양치질과 세수만 간단하게 하고 머리도 대충 정리해서 묶었다. 십오 분 안에 나가야 정시출근한다. 망설이던 꽃비가 현수를 불렀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라! 야, 일어나! 일어나봐. 일어나라고!
무응답, 아니 고랑고랑 숨소리만 들렸다. 마지막 수단! 꽃비가 그릇에 물을 떠서 얼굴에 한 방울 똑 떨어뜨렸다. 무응답. 이번엔 손을 담갔다가 꺼내어 얼굴 위에 올렸다. 뚝 뚜두두둑, 눈을 떴다.
차가워,
뜬 눈으로 꽃비를 바라보았다.
몇 신데?
잠에 취한 목소리가 시간을 물었다. 꽃비의 귀에는 몇 신데 깨우고 난리야? 라고 들렸다.
일어나!
응,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직 취침 중.
일어나. 이제 가야 돼.
응,
부시시 일어났다. 아직 취침 중.
나가야 돼. 더 늦으면 지각이야.
응, 걸어서 욕실로 들어갔다. 여전히 취침 중으로 보였지만,
잠시 후에 현수가 욕실에서 굿모닝~! 인사를 했다. 그리곤 치카치카.
아으... 내 칫솔(이겠지?) 바꾼지 얼마 안 됐는데 라기 보다는 칫솔을 같이 쓰다니. 어차피 다 포기했기에 꽃비는 그러려니 했다. 잠시 후에 현수가 욕실에서 뭔가를 들고 나왔다. 아 젖은 옷! 옷은 바닥에 던져둔 상태로 밤을 보냈으니 거의 젖은 상태 그대로였다. 이걸 어떻게 입고 나가? 라고 현수의 눈이 묻고 있었다. 이제 오 분 안에 나가야 한다.
그럼 어쩌게?
이거 말려서 입고 나갈게. 밖에 열쇠 두는 곳 따로 있니?
너 혼자 여기 있다가 나가겠다고?
그럼 어떡해?
꽃비가 차마 젖은 옷을 입고 나가라고 할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자 현수가 말했다.
훔쳐갈 것도 없네 뭐.
휴우... 그래. 그럼 열쇠는, 음 열쇠는,
열쇠는?
꽃비가 어디 밖에 열쇠를 둘 곳을 열심히 생각했지만 없었다. 더 머뭇거리면 완전지각이다. 끙 소리를 내고 말했다.
아 모르겠다. 열쇠는 네가 일단 갖고 있어. 나 간다.
잠깐, 꽃비야
왜? 급해 지금 늦었어
손 좀 줘
말을 길게 끌면 더 늦을 거라 꽃비가 그냥 돌아서는데 현수가 손을 잡았다. 손을 잡고 잠시 뭐라고 중얼거리자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한 꽃비가 뭐냐는 뜻으로 본다.
정령의 감칠맛, 그걸 네 손에 심었어.
에?
농담이야
아! 야! 늦었다니깐
현수가 뭐라고 입을 열었지만 이미 방을 달려나간 꽃비에겐 들리지 않았다. 하루 종일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은 단골 사고뭉치로 찬수가 별명을 붙인 구멍이가 아니라 꽃비였다. 찬수는 꽃비가 실수를 해도 대충 넘어갔다.
구멍 씨와는 빈도수가 달라. 그러니까 불만 갖지 마.
구멍이가 꽃비에게 오늘 너 나 같다고 놀리자 찬수가 한 마디로 정리했다. 그렇게 길고 긴 하루가 끝나고 꽃비는 집으로 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갔겠지? 이불을 빨아야 하나. 어차피 내 비누 내 샴푸에 내 옷인데 뭐 안 그래도 되겠지? 그래도 남자가 잤던 침대인데... 별 생각 다한다. 꽃비야. 정신 차려.
생각이 물고 물리니 집까진 금세 도착했다. 가방에서 스페어 키를 꺼내어 문을 따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석상처럼 얼어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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