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12

단편소설

by 수요일

단편소설_꽃비 12

꽃잎이 흩어진 정원은 아무도 오지 않는다. 햇살 가득한 날, 꽃잎들 누운 바닥을 찍어 뒤집었다. 옛꽃들이 그림자 가지마다 가득 피었다.

방안을 정리하고 현수가 남기고 간 흔적들도 모두 정리했다. 이불이며 베갯닛, 옷, 수건은 몽땅 세탁기에 넣고 삶음 코스로 돌렸다. 칫솔 비누는 미련 없이 버렸다.

아, 열쇠. 열쇠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열쇠집에 전화 해서 보조키를 달았다. 돈이 좀 들어갔지만 더 안전해지자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이 방에 다시는 그 누구도 들여놓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믿음이 한 번 깨지니 두 번 다시 반복하기 싫어졌다.

닫힌 문은 앞으로는 더 이상 열리지 않을 거였다.

선의를 도둑질로 갚은 꽃사슴에 대한 기억이 잊혀갈 무렵 꽃비는 과일과 냉면의 관계에 대한 비밀을 푸느라 골몰하고 있었다. 수박 소스 냉면의 맛은 어떨까. 참외 소스를 얹은 냉면은?

꽃비의 계란말이 냉면은 이 달의 한정판 스페셜 메뉴로 운영되는 영광을 안았다.

희한하고 오묘하고 신기한 맛!
겨자와 식초로 맛을 낸 소스 간장에 찍어 먹는
냉가의 새로운 한정판 스페셜 메뉴.

메뉴는 이렇게 소개되었다. 찍어먹는 소스에 의해 맛이 결정되는 종류의 레시피였던 것이다. 한정판일 경우는 대개 마니아들의 메뉴였고 도전을 즐기는 블로거들의 평도 나쁘지 않았다. 새롭다. 깔끔하다. 뭐 그런 평들이 있었다.

모델 에이전시와의 만남은 같은 식음료 프랜차이즈 분야인 치킨 모델 제안이어서 성사되지 못했다. 모델료도 꽃비 몫이 2백 만원으로 꽃비에게는 무척 큰 금액이었지만 눈 딱 감고 포기했다.

찬수는 치킨과 냉면이니까 종목이 달라 괜찮으니 해보라고 했었다. 하지만 식재료에 대해 공부하던 꽃비는,

계란말이도 냉면과 같이 써봤는데 치킨은 냉면과 같이 쓰지 말란 법 있어? 치냉이랄까?

라고 생각하여 제안을 거절했다. 모델 건도 꽃사슴 건도 모두 무산된 이후 꽃비는 되도록이면 잡생각을 버리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믿음이란 건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을 때 생기는 것이다.

꽃비는 스스로 힘이 너무 약하다고 생각했다. 지키지 못 할 믿음 따위.

에이전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꾸준히 연락해왔다. 식음료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모델 제안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반응이 긍정적이라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전해왔다.

꽃비가 찬수에게 그런 이야기를 전했다. 아무래도 대표주방장이라 의논을 하는 게 여러모로 나았다.

어 난 좋아. 꽃비 씨가 모델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근데 그래도 이 직업을 계속 하게 될까? 하하하.

물론이에요. 대장님. 전 요리사가 천직이에요.

꽃비도 마주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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