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단편소설 꽃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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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꽃비
그리움을 꿈으로 꾼다면 봄은 영원히 오지 않겠지. 깨어나지 않는 봄날의 꿈, 찬비만 내리고 꽃은, 피지 않았다.
3년 차가 된 날 꽃비는 세컨이 되었다. 퍼스트인 7년 차 선배는 자기는 5년 차에 세컨이 됐는데 넌 너무 빨라! 라고 했지만 퍼스트 선배보다 한정판 메뉴에 더 많은 작품을 올린 꽃비의 실력은 인정했다.
크림소스 냉면은 한정판 메뉴로 끝났지만 토마토소스 냉면은 반응이 좋아서 레귤러 메뉴로 살아남았다.
이어서 바나나 냉면, 오렌지 냉면 등 과즙 소스 냉면이 스페셜에 올랐고 이제 꽃비는 냉면 샤브샤브를 고민하고 있었다.
브레이크 타임. 점심 장사를 마치고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사이, 한 시간의 휴식 시간이 있었다. 누구는 풋잠을 청하고 누구는 찾아온 친구와 커피를 마시러 나간다. 누구는 메뉴를 고민하고 누구는 미래를 생각한다.
뭐해?
냉샤.
그래. 넌 늘 미래에서 잠시 지금으로 돌아온 사람 같아.
에?
마치, 이미 다녀간 지금을 돌아본달까? 난 아직도 내가 한 시간 뒤에 뭘 할지 모르는데.
뭐래
나 좀 봐줘. 나 성훈 씨랑 잘 살고 있어? 애도 낳고?
그걸 내가?
라고 하려던 꽃비가 가만히 근영이와 남친 성훈을 떠올렸다. 너무나 잘 어울리는 두 사람. 서로를 사랑한다기보다는 서로의 허물을 덮느라 애쓰는 두 사람. 둘은 정말 많은 게 닮아있다. 웃음 눈물 기쁨과 슬픔.
아, 진짜 알려줘?
응!
어디 보자.
꽃비의 눈이 반쯤 감기며 목소리가 아련해진다.
보자, 오 아이가 셋.
셋? 진짜 셋? 신기하다. 성훈 씨랑 셋만 낳자 그랬는데
신기하긴... 네가 아이 셋은 낳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 라고 생각하며 꽃비가 말을 이었다.
너희들 정말 따뜻하다. 마냥 평탄한 삶은 아니겠지만 마냥 따뜻해.
아... 그거야. 내가 바라는 완성된 그림은. 역시 넌 미래에서 다녀가는 중이었어. 이건 우리만의 비밀.
근영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꽃비를 껴안고 속삭였다.
완성된 그림...이라.
꽃비가 냉샤의 완성된 그림을 떠올렸다.
소고기를 끓는 육수에 살짝 담갔다가 얼음 통으로 냉기가 유지되는 냉면에 싸서 소스를 찍어먹는 냉샤. 차갑고 따뜻한 온도의 유지와 입에 들어갔을 때 온•냉의 조화가 맞아떨어져야 했다. 그러자면 고기의 두께부터 담갔다가 꺼내는 시간 등 재료 준비에 먹는 사람이 지켜야 하는 과정까지 너무 까다로워서 고민이었다.
포기할까.
하면서도 쉽게 포기한 적이 없는 꽃비였다. 맛의 조합. 새로운 맛을 찾는 사람들은 그래서 냉가를 사랑했다. 시도는 누구나 해볼 수 있지만 맛을 인상 깊게 남기는 일은 아무나 되는 일이 아니었기에.
찬수도 그런 꽃비를 무척 아꼈다. 낮엔 일하고 밤엔 집에서 연구하는 꽃비 같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었다.
하지만 퍼스트는 좀 달랐다. 그는 꽃비의 능력과 노력은 인정하면서도 찬수의 꽃비에 대한 편애는 무척이나 싫어했다. 찬수 없는 퍼스트는 주방의 지배자였다. 보통은 세컨에게 시키지 않는 일을 시키고 그것도 제대로 못하느냐고 면박을 주었다.
저 감자를 5분 내에 일정한 크기로 깎아 와라,
이런 식이었다. 마치 누가 들으면 상당히 섬세한 교육을 시키는 것 같았지만 알고 보면 막내나 하는 감자 500개 깎는 일을 세컨에게 시키는 거였다. 또 엉뚱한 과제를 내기도 했다.
내년 밸런타인 때 연인들이 우리 냉가에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꽃비가 밸런타인 냉면을 개발해봐. 냉면과 초콜릿의 조화, 멋지지 않나? 3일 줄게.
곧 어버이날인데 냉면과 카네이션이 만나면 어떻게 되겠니? 꽃비가 만들어봐.
구멍이는 구멍이대로 그런 꽃비가 안타까웠지만 제 코가 석자라 어쩔 수 없었다.
오늘도 꽃비는 열심히 깨지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먹어? 너 같으면 손이 가겠니? 똑바로 안 해?
한 입 맛본 퍼스트는 꽃비가 이틀 밤을 새워 만든 요리가 담긴 접시를 들어 바닥으로 기울였다.
철푸덕,
3일 전에 퍼스트가 만들어오라고 과제로 내준 순두부 냉면이 바닥에 흩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퍼스트의 위세에 숨도 못 쉬고 있었다. 쏟아진 음식을 보던 꽃비가 빗자루로 쓸어 담아 버리고 바닥을 밀대로 닦았다. 그런 직후 찬수가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 순간 주방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