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단편소설_꽃비 14
아픈 만큼, 슬픈 만큼, 씻겨지기라도 한다면
평생의 고통을 몰아서 한 번에 끝내는 것도 좋겠어.
탁탁탁탁탁 아옷!
감자를 썰던 꽃비가 갑자기 짧은 비명을 냈다. 신경 끄겠다고 했지만 바닥에 질펀한 순두부 냉면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나보다. 구멍이가 옆에서 양파를 썰다가 빨갛게 피가 흐르는 꽃비의 손가락을 잡고 어쩔 줄 몰라하다가 입에 덥썩 물었다. 구멍이는 자신의 손가락에 하듯 꽃비의 베인 손가락을 입으로 지혈 할 작정이었다.
아... 맛있어!
응?
주방 식구들이 그런 구멍이를 희한한 얼굴로 보았다. 꽃비가 손가락을 빼내어 다른 손으로 눌러 지혈하며 뭐래 했다.
아 아니, 하하 그게 아니고요! 손가락이 진짜 맛있
엥?
퍼스트가 옆사람 목을 무는 시늉을 하며 구멍이를 가리켰다. 더 이상해진 구멍이가 머쓱해서 비상약상자를 들고 와 꽃비 손가락을 소독하고 밴드를 감았다. 찬수는 꽃비에게 조심하지 한마디를 건네고 다시 냉면을 플레이팅했다.
자, 오늘은 회식하자. 내가 쏜다.
일이 끝나고 퍼스트가 회식을 가자고 했다.
아, 저는 일이 있어서요.
꽃비가 한 발을 빼자 퍼스트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에이 왜 그래. 아침의 그 일 때문이야? 나도 사실은 그러고 하루 종일 미안했어. 그래서 꽃비 씨 풀어주려고 회식하잔 건데 주인공이 안 가면 안 되지.
그게 그... 말이죠.
됐어. 내일 쉬는데 뭐. 자 다들 가자고.
꽃비가 어쩔 수 없이 뒤를 따라 갔다. 앞에 가는 퍼스트 그룹을 보며 구멍이가 조잘거렸다.
아 저 인간 정말, 못 돼 처먹었네.
뭘... 실력을 키워주려고 그런다잖아.
키워줘? 누가? 저 인간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란 거 너도 잘 알지?
꽃비가 고개를 흔들었다.
괜히 들을라. 그럼 너만 고생 꽃 피는 거야.
들으라지 뭐. 나도 이젠 이판사판이야.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는 줄 아나. 넌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해봤지?
뭐 나야 뭐 그냥
그러니까 말야. 꽃비야. 내가 슬그머니 알아봤더니 냉가 출신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이래. 우리 이참에 좀 날아볼까?
에이 그래도 여기서 배우는 게 훨씬 더 좋지 않을까?
배워? 뭘 배워? 바닥에 음식이나 쏟아버리는 저런 버러지 같은 퍼스트에게? 딱 봐도 오늘 왜 회식하는지 알겠다.
나 때문이라잖아. 풀어주려고.
뻔하잖아 너 낼 촬영 있는 거 저 인간이 알고 이러는 거. 두고 봐. 꽃비 너 오늘 아마 끝판까지 붙들려있을 걸!
아 설마, 그 정도겠어?
하여튼 두고 봐. 그래도 이 근영이만큼은 끝까지 네 곁에서 지켜줄 테니까 안심 딱 놔. 친구 좋단 게 뭐냐. 하하하하.
구멍이가 호탕하게 웃자 앞서 가던 퍼스트가 돌아보았다. 구멍이 목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퍼스트의 고개가 다시 돌아가자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구멍이였다.
자 마셔 마셔
이건 뭐지. 퍼스트는 오늘 타겟은 너야 라는 듯 꽃비를 앞에 앉히고 쉴 새 없이 술을 권했다. 삼겹살이 앞에서 타고 있었다. 안주 먹을 틈도 없이 술잔이 채워지고 건배가 들어왔다. 꽃비는 술이 약한 편이 아니라 웬만하면 거부하지 않는데 오늘은 속이 불편할 정도로 마셔야 했다.
이제 그만 하고 가시죠?
어느 직원이 한 마디 했지만 퍼스트의 대답은 엉뚱했다.
오케이. 3차 가자. 3차는 노래방? 하하
소주에 치맥으로 건너온 상황, 이제 노래방이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세 시를 넘기고 있었다. 노래방에선 캔맥주를 시켰다. 그리고 막내를 불러 편의점에 심부름 보냈다. 잠시 후 막내는 양주 두 병을 품에 안고 돌아왔다.
아으 아으 아으
꽃비는 그저 아으 소리만 하며 집으로 걸어갔다. 구멍이가 같이 비틀거리며 꽃비를 집 앞까지 바래다 줬다. 구멍이 옆엔 구멍이의 남자 친구가 기다렸다가 두 단짝을 에스코트 했다.
거봐 내가 그 인간, 딱 그런다고 했지!
구멍이가 남친 팔에 반쯤 매달려 오며 나 가게 앞에 돛자리 펼까? 라고 말했다. 밤 바람이 서늘한 게 다행이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나와서 헤어진 시간이 새벽 네 시. 촬영장 집합 시간은 오전 열시. 그래도 몇 시간은 잘 수 있다. 집 앞에서 구멍이와 진하게 포옹을 하고 구멍이 남친에게 우리 근영이 잘 부탁함다~ 라고 꾸벅 배꼽인사를 했다. 착한 인상의 구멍이 남친이 같이 꾸벅 배꼽인사 했다.
삐걱 삐걱,
둘이 돌아가고 꽃비가 계단을 올랐다. 문 앞에서 보조키의 번호를 눌렀다.
삐로로롱,
열쇠는 이제 별 의미가 없어졌기에 열쇠로 잠그는 일은 관둔지 오래였다.
아으 아으 아으
꽃비가 비척거리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꽃비가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닫힌 문에 닿는 가로등 불빛 사이, 열쇠 구멍에 꽂혀있는 열쇠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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