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단편소설_꽃비 17
꽃이 매달려있는 인연은 가는 숨 같은 바람에도 톡톡 끊어진다. 어떤 꽃도 되돌릴 수 없는 세상과의 이별, 단 한 번의 추락. 꽃 지고 내린 비.
타!
어? 이 차?
안 가? 여기 어디서 약속있어?
아 아니.
가자 그럼.
꽃비가 차에 타고 차는 곧 세트장을 떠났다. 아직도 뭐가 뭔지 정리가 안 된 꽃비가 뭐부터 물을지 몰라서 한동안 차는 조용히 서울로 올라갔다.
저기,
응,
이 차는 네 차야?
응,
차 살 돈이 있었어?
사고 났다고 했잖아.
무슨 사고가 어떻게 나면 돈이 생겨서 차까지 사?
교통사고,
교통사고?
응, 아까 팔 보여줬잖아.
그게 사고 때문에 다친 건지 어찌 알아?
현수가 팔을 내밀었다.
팔 걷고,
응,
꽃비가 팔을 걷었다.
다시 만져봐. 그 끝에서 끝까지.
꽃비가 남자 팔을 만진다는 거에 좀 주춤하다가 상처인데 뭐 어떠냐 싶어 팔을 잡았다. 그리곤 한 손을 상처에 대고 우툴두툴한 자국을 따라 움직였다.
어? 어 어... 이거 왜 이래?
뭐가?
하 한 바퀴가 도는데,
아 그거. 맞아. 한 바퀴 돌아.
실밥자국이 한 바퀴를 돌았다. 눈으로 확인하려고 팔을 들었다. 현수가 팔을 빼내 앞에 달린 등을 켰다. 차에 불이 들어오자 다시 팔을 내밀었다.
아... 이런 상처는 어떻게 하면 생기니.
잘렸어.
아으... 꽃비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팔이 완전히 잘렸었어. 그걸 병원에서 붙여준 거야. 그것 때문에 오래 병원에 있었어. 재활까지 거의 일 년. 그 기간에 맞춰서 합의금 받았고.
그래서... 못 왔던 거야?
응,
아... 어째.
괜찮아. 이제 다 고쳤어. 참 거기 앞에 콘솔 열어봐.
꽃비가 콘솔을 여니 하얀 봉투가 들어있었다.
이거?
응, 거기 내가 갖고 나갔던 돈에서 옷 사고 고기 사고 그런 거 빼고 남은 돈 있을 거야.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사십이만칠천 원이 들어있었다. 돈을 꺼낼 때 영수증들이 같이 빠져나왔다. 그 날짜로 적려있는 청바지, 티, 고기, 채소들... 이거 뭐야 정말. 꽃비가 속상해서 눈물을 흘렸다. 기억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던 그 봉인이 봇물처럼 터져버렸다. 야속하고 야속했던 믿음에 대한 배신. 그 배신 때문에 마음을 닫아버린 사람에 대한 애정. 그것들이 모두 현수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혼자 오해해서 벌어진 일이란 거였다.
어떻게 난 너만 만나면 이렇게 황당해지니.
한동안 쿨적거리며 울자 현수가 티슈를 꺼내서 건네주었다. 코를 팽 풀고 궁금한 걸 묻기 시작했다.
돈은 왜 다 가져갔어? 한 십만 원만 갖고 갔어도 됐잖아.
내가 물건값을 몰라서.
그 돈 집세 내려고 모아뒀던 건데,
그래? 미안해. 몰랐어. 난 생활비인 줄 알고.
영수증은 또 뭐야?
아, 여자들 그거 쓰지 않니? 가계부 같은 거. 쓸 때 붙이라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아 참. 세트장은 어떻게 알고 왔어?
내가 알고 간 건 아니고 병원 나오자 마자 그 세트장에서 알바를 시작하게 됐어. 아까 너 촬영했던 세트 그거 만드는 알바야. 어제 만들면서 들었어. 꽃비가 모델이라고.
현수가 아주 길게 말을 했다. 아마도 가장 길게 한 말인 듯했다.
아... 그랬구나.
응, 너 좀 유명해졌더라. 매력적이라고 세트 만드는 사람 중에 팬도 있던데,
그래? 유명해봐야 나도 알바인데 뭐. 집은 구했니!
아니,
그럼 어디서 자?
세트장에 붙은 방이 있어. 남자들 네 명이 같이 자서 좀 지저분하고 냄새 나고 그렇지.
아, 힘들겠다.
노숙할 때보단 낫지. 아 내 몸에서 냄새 안 나니?
아니 아무 냄새도 안 나.
꽃비는 그의 냄새를 지운다고 온갖 것들을 다 빨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막상 그 이후로 가끔 현수를 떠올리게 했던 건 씻으면서 맡는 자기의 비누나 샴푸 냄새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꽃비네 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꽃비가 현수에게 말했다.
잠깐 들렀다가 갈래?
나야 좋지. 하지만 냄새 날 거야.
씻으면 되지.
옷 줘?
꽃비는 그 말이 무척 반가웠다.
응,
알았어. 차 대 놓고 들어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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